나는 내 아이를 잘 몰라요 (3)

지속되는 흥분

어쨌든간에

우리들은 그토록 고대했던 "부모"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왕과 왕비가 되었어요


우리를 찾아온 공주덕분에.


누군가 말했지요!

"사람 난 기쁨이 큰 바위와 같아 보이고

해산의 수고는 작은 모래알 같아보인다."

아내의 얼굴에는

방금 직전까지 사투(死鬪)를 벌인 전사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짧은 결혼기간이지만, 지금 처럼 아내의 얼굴이 예뻐보인 적이 또 있었을까?

실제 아내는 붓기가 빠지지 않았고, 가끔 고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항상 가득했어요.

그래.. 우리가 이 순간을 얼마나기다려왔어.

"참 우리 아기 어디에... 빨리 내 품에 안겨줘요.

당신 아기 이름 지었어요?'


나는 아차 했지만 침착의 자리로 손쉽게 돌아왔어요.

"당신이랑 같이 아기 이름지으려고. 우리 아기인데.. 어떻게 나 혼자. 이름을..

그것은 안되지."


차라리 이 순간이 멈추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구상의 모든 시계가 정지해버렸다면.

우리는 벅찬 마음으로 우리의 아기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하루 하루 조심스럽게 보듬으면서 키워나갔지요.

"애랑(愛娘)"

공주의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습니다.


애랑이의 첫돌잔치는 우리 둘의 결혼식보다 화려했어요.

다이애나 왕비의 결혼식 못지 않은 멋진 잔치였습니다.


가끔 '우리 결혼기념일은 언제였지?"할 정도로 애랑이가 우리 가정의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랑이가 첫 걸음을 내 딛었을 때, 지구가 자전을 멈추는 줄 알았다.

애랑이에게 앞니 두개가 솟아올랐을 때, 영일만에서 바라보던 일출보다 더 장엄했다.


첫 아이에 대한 꿈 그리기.

어떠셨어요.

다들 그리했겠지?

그래요 우리도 다르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남다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보 우리 애랑이 어떻게 키울까요?

장차 자라서 애랑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을까?"


아내의 말에 "우리 처럼 늦게 결혼하지 말고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내가 대답하자 아내는 "아니 애랑이를 우리 곁에서 빨리 분리시키자고요?'라고 반문해 봅니다.

"우리 애랑이가 20대 중반이면 우리도 60대 중반이 되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지요.


아직 20년이나 남았는데..

그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애랑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나기를 달력이 한번 바뀌고 ... 또 바뀌고... 두어차례 더 바뀌었습니다.


애랑이 만큼 착하고 조용한 아이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애랑이 칭찬만 하지요.

"애랑이는 참 조용하고 착해..."


우리는 이러한 찬사가 전부였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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