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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Habiru)"의 입장에서 읽는 출애급기(2)

거대한 전환점이 되는 한 아들의 탄생

사실 하비루(Habiru)라는 종족 안에는 야곱의 후손만이 존재한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가 머물게 된 이집트(Egypt)는

 이집트 신왕국(New Kingdom of Egypt)이라고 일컬어야 정확하다.

이집트의 왕 람세스(Ramsses)를 태양신 파라오라고 부른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확장정책을 폈다.

오랫동안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그 백성들을 포로로 삼았다.

하비루는 먹을 것을 찾아 이집트로 넘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포로와 같은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비루는 주변국가에서 끌려온 노예들과 섞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하비루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엮어진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와 다른 종족과 함께한 종족들이 하비루를 형성한 것이다.


이집트 왕들은 왕권강화를 추구하여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이집트를 강력하게 통치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을 태양신으로 만들어 신성시하는 정책을 폈다.

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불멸신앙을 강조했다. 

즉 왕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주장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중의 하나가 미이라를 만들어 왕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아울러 피라미드와 같은 왕의 무덤을 만든 것도 이와같은 정책의 일환이었다.


동시에 왕의 능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왕궁을 건설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과업을 성취하는데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은 바로 이집트 땅에 거주하는 포로계층이었다.

하비루는 이들 중의 하나였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포로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포로들이 급증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람세스는 두 살이하의 아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날로 부터 하비루인 우리들에게서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가끔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죽어가면서 신음하는 비명소리와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들의 절규였다.

종종 아들의 출생을 숨기려했다가 발각되어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자신의 태를 끊은 새생명을 스스로 죽일 수 있던가?


이런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에 하비루를 향한 정책은 더욱 가혹해졌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하비루들은 아들을 살리려는 온갖 지혜를 짜아내곤 했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을 낳은 한 히브리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구니를 만들어 아들을 강보에 쌓아서 나일강에 띄워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구전으로 들어왔던 야훼에게 기도했다.

모든 하비루 여인들이 그리했던 것 처럼.


아들이 담겨진 바구니는 강물을 따라 흘러 흘러가고 있었다.


이 때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여인의 눈에 이 바구니가 들어왔다.

여인은 람세스의 딸 즉 공주였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녀는 바구니에서 잠자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흥분했다.

'태양이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그녀는 이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물에서 건졌다.'는 의미로

 '모세(Moses)"라고 이름을 지었다.


모세는 이렇게 이집트의 왕궁에서 태양의 아들로 성장했다.

다른 이집트의  왕자들과 함께.

하비루이지만, 마치 이집트 사람인 것 처럼.

본의 아니게 신분을 속이면서.


그러나 태양 아래 무엇을 숨길 수 있을까?

이러한 비밀을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하비루의 역사는 이 아들로 인하여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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