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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0. 2024

[반수] 인생이 삼세판인 이유

실패하더라도 '노력'이 남는다

대한민국의 입낳괴 반수생


 요즘도 보니까 재수생 및 N수생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이 현실에서 받는 점수와 자신이 목표하는 대학의 갭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우리 친척누나가 다니던 K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했다. 돌아보면 대학진학을 잘 한 친구들은 일찍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깨달은 아이들이었다. 그런 똑똑한 아이들은 대부분 재수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K대학을 목표했으나 실망스러운 수능성적을 받고 C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래서 고등학생에게 가장 큰 성취이자 기쁨인 대학입학이 나에게는 그저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C대학을 목표로 해서 자신이 지원했던 대학 중 C대학이 가장 높은 학교였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들은 학교를 정말 기쁜 마음으로 다녔으며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친구들과 재미있게 잘 놀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친구들보다는 더 나은 대학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알량한 자만심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결국 그 친구들과 비슷하게 졸업하여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저런 마음이었으니 공부도 동아리생활도 하나 100%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를 못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친구들이 과방에서 나풀나풀 뛰어놀던 햇살 가득한 봄이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 다니고 재수학원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네 재수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다. 재수학원 선생님은 그래도 인서울 대학교에 다니는 나를 재수반에 넣어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매우 기뻐하셨다. 


 C대학을 마음속으로 무시하던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입시가 낳은 괴물이었다.




[반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가 했을까


 자유를 빼앗기고 재수학원에 있는 일주일이 정말 힘들었다. 수업 듣고 종 치면 쉬고, 밥 먹고 자습하고 짜인 틀 안에 있는 게 처음에는 갑갑했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했던 관성이 있기 때문에 적응하니까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책이나 사물함에 의지를 불태우는 문구를 하나씩 적어놓고는 했었는데, 나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공부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열심히 했다. 두 번 다시 수능공부를 다시 하기 싫었다. 아마 내 기억에 10시에 집에 가도 되지만 추가로 공부할 사람을 위해 11시까지도 운영했었는데 항상 11시에 갔다. 명절같이 하루 이틀 쉬는 날이 있었는데도 그냥 학원에 나와서 공부를 했다. 오히려 대학생을 한 번 해보니까 이왕 하는 김에 더 좋은 K대학의 대학생이 되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9월 모의평가에 드디어 내가 원하는 점수를 얻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파카를 꺼내 입는 날이 다가오면 수능이 다가오는 날이다. 나는 부푼 기대를 품고 두 번째 수능을 봤다. 수능을 보러 가는 길에 C대학의 친구들 생각이 났다. 수능을 잘 보구 나서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신나는 송별회를 하고 싶었다. 재수학원 친구들에게도 부모님께도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룰루랄라 집에 돌아와 채점을 했고, 배치표를 돌려보았다. 배치표에 뜬 것은 C대학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을까!?




[삼반수] 3번째 시험을 본 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다음 해 3월 C대학을 돌아왔다. 출사표를 던지고 나왔기 때문에 복학하는 것이 좀 쑥스러웠다. 복학했을 때도 마음이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1학년 때 제대로 못 놀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술도 많이 마시고 과 농구모임도 열심히 하고, 후배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알바도 하면서 돈도 벌었기 때문에 즐거운 날들이었다.  다만 대학 와서 뭘 해야 될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심적으로는 방황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재수를 한 동갑내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친구들은 수능 결과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그날 밤을 새워서 술을 퍼마신 결과 우리는 이 학교를 다니기 너무 아쉽기 때문에 수능을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학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던 친구 2명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수능공부를 하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저 아이들과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3번째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삼반수는 나의 운명이었다.


 8월부터 딱 한 달을 공부하고 9월 모의평가를 봤는데 내가 원하는 점수가 또 나오고야 말았다. 빨리 휴학신청을 하고 그냥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공부도 관성이라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삼수 정도까지 되니까 어디 말하고 다니기도 좀 그래서 혼자 조용히 공부를 하고, 수능 날에도 조용히 수능을 보고 집에 왔다.


 집에 돌아와 채점도 조용히 했고, 배치표를 돌려보았다. 배치표에 뜬 것은 역시 C대학이었다.




실패하더라도 노력은 남는다


 인생은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다. 왜 하필 2번도 아니고 4번도 아닌 3번일까? 생각해 보니 사람이 첫 번째는 실력이 없는 것일 수 있고, 두 번째는 실력이 있는데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세 번째에도 이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는 운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삼반수가 끝난 후에는 더 이상 마음이 아쉽지 않았다.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고 이제는 더 이상의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후회 없이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부었기 때문에 이 게임에 더 이상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3번의 수능 시험을 통해서 실패하더라도 노력은 남는다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버티는 힘으로 호주에서는 퇴근하고 1~2시간씩 영어를 익혀서 실전에서 매일매일 써먹었고, 스페인어도 빨리 배워서 남미를 신나게 여행했다. 처음의 학점은 망했지만 나중에 졸업할 때는 학점도 4점을 넘게 되었다.


 실패해도 후회 없이 하면 노력이 남는다. 그 노력으로 다른 일을 하면 언젠가는 잘 된다 이것이 20대 초반에 내가 얻어간 가장 귀중한 교훈이었다.


당시 매시간을 기록했던 생활 기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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