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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08. 2024

[학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무지함은 알을 깨는 동력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세 번째 문장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태어나려는 자는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된다는 내용이다. 다만 다음 문장은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신이다. 책에서는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선과 악의 세계를 무너뜨리며 성장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아브락사스에게 날아간다는 것은 사람이 성장할수록 선악이 점점 모호한 세계로 진입한다(=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학창 시절은 싱클레어처럼 선악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선악의 이분법속에서


  아버지는 나의 세대와 비교하여 좀 더 힘들었던 세대를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입시에 실패하면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지면서 점점 인생이 힘들어진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은 '선'의 세계를 잘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세상물정을 잘 모르던 나에게는 공부와 입시라는 게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오고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로지 선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야간자습 도망가고 PC방을 가본 적도 없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셔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내가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인 대학낙방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악의 세계가 두려웠으며 그쪽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버티는 끈기는 있었는지 성실하게 자습도 하고 수업도 빠짐없이 들었다. PC방도 가고 야자도 빠지면서 정통코스를 밟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했다. 사실 그 시절엔 내가 그 친구들을 종국에 이길 수 있을 걸고 생각했지만, 수능을 3번 보면서 공부 머리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고속도로에서 열심히 액셀을 밟고 있는 아이였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다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을 가며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관념적인 '선'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길로 가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열심히는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무지한 선악의 세계 속에 살았기 대문이 아닌가 싶다.




무지 속의 몸부림은 알을 깨뜨리고 나오니


 무식한 사람들이 용감한 법이다. 어쨌든 나는 고등학교 때 내가 못했던 과목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제일 못했던 과목은 수학이었어서 가장 열심히 했는데 웬만한 수학 문제유형은 줄줄이 외워버렸고, 나중에는 수학점수가 모든 과목 중에 가장 높았다. 엄밀히 말하면 수학을 공부한다기보다 수학시험을 공부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살아가면서 필요한 숫자적인 감각은 배웠다.

 

 그래서 그때는 몰랐지만 열심히 해서 남은 것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뭐든 쓰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했지만 쓸모가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라 너무 어렸을 때부터 쓸모를 생각했다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무지함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게 되는 동력이 된다.


 점심시간에 급식 줄 서면서 봤던 영어 단어장과 예전에 유행하던 5형식 영어 문법책 덕분에 호주에서 생활할 때 잡담을 하고, 영문 뉴스를 읽고 들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영어라는 언어체계는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엄청난 기반을 제공해 주어서 스페인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개의 무기로 세상의 별의별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인생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는 정답이 있고 선악이 있는 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일 뿐이지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선악의 세계가 매우 혼재된 세상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고, 이혼한 사람이지만 훌륭한 스페인어 선생님인 사람도 있었으며, 근면하지 않아도 회사생활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설적으로 무지함에서 나오는 몸부림이 결국 세계를 확장하여 알을 깨뜨리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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