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그리고 쿠바 여행을 꿈꾸다
사람들은 흔히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당시에도 군대를 정말 가기 싫었으며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군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수많은 길 중 군대를 택할 필요는 없다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한국 남자로서 군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맛있는 진주온면을 눈물과 함께 집어삼키며 진주로 입대했다. (그 이후로 진주로 다신 가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 집 가까운 편한 보직을 얻고자 화장실에서 남들 잘 때 공부를 열심해해서 경기도 평택에서 행정병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모총장 아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 누구도 겨루어도 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군생활을 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군대의 좋았던 점이라고 하면 입시와 대학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던 나의 인생에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관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런 가운데서도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좀 편해지던 일병 때부터 회계사 공부를 했다. 재무회계, 관리회계, 재무관리, 세법을 정말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상병말이 되었다. 비록 입시는 망쳤지만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사'자를 달아보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두꺼운 세법 책을 보며 머리를 싸매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습실에서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나는 참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학생이었다. 시키는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은 왜 맞아야 하는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은 도대체 왜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학교에 다니는 이유만큼은 납득을 하지 못했다. 그때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쓸데없이 읽었던 책들 중에 한 권이 체 게바라 평전이었다. 장 코르미에라는 프랑스 평론가 아저씨가 체 게바라에 대한 자료를 모아 모아 집필하였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로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천식이 심했고, 공부 머리는 있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때는 백패커스 같은 여행 문화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선배였던 알베르토와 함께 포데로사라는 오토바이 한 대에 의지하여 아르헨티나를 출발하여 칠레,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여행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남미의 보통사람들을 보며 추후 쿠바혁명에 참여하여 혁명의 주역이 된다.
여기까지였다면 체 게바라는 역사책에 한 줄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좀 특이한 이야기가 있다. 혁명의 대장이었던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에 가까워 그게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누구와 타협해서든 미국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체 게바라는 순수한 사회주의자였다. 결국 피델 카스트로는 종신집권의 길을 걸었지만,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고위직책을 버리고 아프리카 콩고, 남미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혁명을 지속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지금 생각하면 좀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도 생각이 들긴 한다.
어쨌든 체 게바라의 인생 여정을 바꾼 여행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정말 궁금했다. 체 게바라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의 발자취를 밟아보고 싶었고, 그때 처음으로 쿠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만 해도 여행 유튜버들이 전 세계를 구석구석 여행 다니는 시기가 아니었기에 내가 쿠바를 가보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정신 나간 눈으로 쳐다보곤 했고, 나도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내가 그걸 진짜 해낼 수 있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다들 전역이 다가오자 먹고살 걱정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저런 생뚱맞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 외롭기도 했다.
나의 군대 업무는 비유하자면 인사총무팀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신병이 올 때마다 일주일 동안 우리 부서의 작은 방에 머물게 했다. 어느 날 신병 중 한 명이 입대하기 전에 이집트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길 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사기 치려고 했던 이야기, 피라미드를 보았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 친구도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 정말 웃기게도 나중에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다시 만나보게 되었다.)
어느 날은 인터넷을 하다가 인도를 다녀온 학교 후배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인도의 기차 플랫폼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군대 너머에 있는 세상들이 너무 궁금했다. 참 운 좋게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진취적인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찾아온 나의 친구들의 여행 소식은 내가 여행이라는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인생을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가장 큰 그림이었던 대학입시와 군대 그 어느 것도 내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단 한 번이라도 내가 그린 그림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군대라는 시간은 나에게 일시정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며 고맙게도 몸과 마음이 편안한 군생활을 하는 기회를 얻었고,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쿠바 여행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쿠바 혁명 이야기를 해보자. 체 게바라는 여행 이후에 멕시코로 건너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서 쿠바로 잠입할 계획을 세운다. 정말 이게 다야?라고 할 정도로 초라한 그 계획은 82명의 대원들이 레저용 보트인 그란마 호에 탑승해서 쿠바에 상륙한다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상륙도 제대로 못해서 살아남은 대원들은 고작 14명이었다. 당시 부패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합류하였으며, 황당한 계획이지만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으로 결국 수도인 아바나에 입성한다.
어쩌면 나의 계획과 꿈도 그란마 호에 탑승해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처음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한줄기 빛을 마음속에 가진 사람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엇이든 이룬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 시작점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