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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1. 2024

[여행] 여행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나만의 색깔은 경험의 다양성에서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2014년 11월에 아르헨티나로 입국해서 남미 여행한 후에 2015년 1월에 드디어 쿠바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군대에서 수험생활을 접게 해 준 꿈에 그리던 곳이었다. 쿠바는 내국인들이 쓰는 화폐(모네다)와 외국인들이 쓰는 화폐(쿡)가 이원화되어 있는 좀 신기한 나라였다. 게다가 최고급 호텔에 가지 않으면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에 3주 동안 한국친구들의 소식도 전혀 몰랐다.


 쿠바는 좋은 점도 많이 있었다. 남미에서 치안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라 밤에 아무 데나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한국에 살면 이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 지내보면 아무 데나 걸어 다닌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또한 명목상으로 국가가 식량의 일부를 배급하고 의료시스템을 전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에 경미한 질환으로 사람들이 아프거나 사망하는 일도 없다고 들었다. 구걸하거나 노숙하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다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훌륭한 국가는 분명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지만 아직도 과거에 매몰되어 길거리에는 쿠바 혁명의 주역들인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의 빛바랜 초상화만 가득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보상체계가 잘못 설계되어 공무원이나 교수 같은 사람들도 택시기사를 꿈꾸는 이상한 나라였다. (쿠바에서 택시기사는 외국인 화폐인 쿡을 벌어들이는 최고의 직업이다.)


 물론 체게바라의 발자취를 밟으며 매일매일 시가를 피고 게으르게 늘어져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나의 26살은 처음으로 내가 내가 꿈꾼 것을 내 힘으로 이룬 뜻깊은 시간임은 분명했다.




경험의 다양성은 나만의 색깔을 만든다


 이후 중남미에 총 1년을 머무르고, 중동/북아프리카/아시아에 6개월 정도를 여행했다. 그때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한국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하나씩 늘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었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정해진 인생의 길을 잘 걸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대학교를 갈 때 대학교를 가고 취업할 때 취업을 하고 결혼할 때 결혼을 하는 것처럼 저 길을 성실하게 가면 언제나 그 끝에는 행복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나도 지금까지도 대부분 정해진 길을 걸어왔으며, 현실적으로 일정 부분 그 길을 잘 걷는 것 또한 행복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엔 너무나도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그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중남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의 관점에서 신기하게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었다. 한 번은 에콰도르 키토의 어떤 관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적이 있었는데 스페인어가 기초라면 영어도 배우기 쉬울 텐데 기본회화도 못하는 아이들이 여길 나와서 뭘 해서 먹고살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다만 중남미 사람들은 참 신기하게도 너무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남미 문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족을 아끼는 문화였는데 비록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가족이 아닐지라도 가족끼리 정말 자주 모이고 식사도 자주 하고 춤도 추면서 그 시간을 즐거워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식이 있고 열심히 살고 무엇을 성취하는 것은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다양한 삶을 접할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 많은 세계들이 쌓여갔으며, 그것들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색깔을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색깔들은 매일매일 덧칠되면서 선명해졌다.




여행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사실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여행은 그렇게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학위가 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격증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행을 오래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어디 가서 취업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목표지향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행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여행을 할 때 나 스스로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환경들과 부딪힐 때마다 내가 더 뚜렷해졌다. 나는 사람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먹을 게 별로 없고 볼 게 없는 나라들이라도 좋아했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었고, 이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친절함을 배우게 해 주었다. 구소련 국가(조지아,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겉은 차가웠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들로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일 때가 가장 좋았으며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특정한 여행지를 가야만 하는 목적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이렇게 여행은 내가 스스로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해 주었으며,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그려주었다.


 생각해 보면 바쁘게 살았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저렇게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인생의 기초공사를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도 물론 시간이 많았지만 통제되고 동일한 환경에만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환경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도 다양해지는 여행만큼 나에게 인생의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은 나의 자아를 만들고 나의 가치관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여행의 기억들은 가끔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고 꺼내보는 나침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살아가며 나침반이 하나씩 필요하기에 나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 떠나서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는 것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여행은 언제나 좋다.


쿠바의 올드카는 참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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