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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3. 2024

[취업] 내 색깔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걸까?

수비적 취업에 대한 소소한 반항

압박면접을 당하는 취준의 시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취업이 쉽다는 이야기를 단 하루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취업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부터 엄청난 화두였다. 내가 사회학과를 벗어나 경영대 사람들과 재무학회를 했던 이유도 한량기 넘치는 인문대 선배들을 보면 취업해서 먹고는 살 수 있을까 의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이 웃긴 것이 내 사회학과 선배들이 따지고 보면 경영대 선배들보다 나중에 더 잘됐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었던 나도 취업에 걱정이 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취준생'이나 '압박 면접'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성장 시대에는 직장을 골라갈 수 있을 정도로 대학생들이 갑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저성장 시대의 초입국면의 우리들은 완전한 을이었다. 취업은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으며, 한때는 대학생이었던 면접관들도 대학생들을 '압박'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취업에 대한 생각은 걱정은 여행으로 다행히 3년의 시간 동안 잊고 살 수 있었다. 다만 때때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취업 고생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스페인어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살려서 해외영업직무를 노려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다. 


 호주에서부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사실 취업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걱정이 넘쳤다. 다만 걱정과 달리 난 아직 마음속으로 여행을 끝내지 못했었다.



취업은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깎는 거구나?


 2016년에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끝까지 여행을 하느라 개강을 하고 일주일이 지난날에야 귀국을 해서 집에 오자마자 첫 수업을 들으러 갔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복학하고 학교를 다닐 때도 머릿속에는 스페인어와 여행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방학을 하자마자 스페인어 DELE 시험을 치르고 다행히 합격증을 받아 들고 나서, 바로 배낭을 메고 중국 사천성과 운남성으로 떠났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때는 여행을 하다 보니 '현재주의자'가 되어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 된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그리고 2학기가 개강하기 직전에 한국에 왔다. 취업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부랴부랴 취업 스터디라는 것을 찾아서 2개 정도를 가봤다. 굉장히 생산적인 모임이었다. 서로 자소서도 봐주고 취업하고 싶은 회사들에 대한 내용도 공유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1년 이상 취업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어서 내공이 상당했다. 나는 나이가 스물아홉이었지만 오히려 동생들에게 배우는 처지였다.


 아직도 첫 자소서를 봐주던 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체게바라 평전을 읽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적었다. 취업 준비에 관심이 많아 정보가 많았던 남자분이 말했다.


 "체게바라 이런 거는 자소서에 쓰면 안 돼요. 회사 담당자들이 이런 반항적인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아요. 체게바라 이야기 이런 거는 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체게바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제가 여행을 가게 된 이유인 걸요."


진정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분은 말하셨다.


"이렇게 눈에 띄는 내용들이 있으면 바로 서류 탈락이에요. 면접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요."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취업이란 나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고 나를 깎아서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거라는 걸. 물론 이미 내 마음대로 2년 반을 살아온 나였기 때문에 체게바라 이야기는 그냥 적었다.


그냥 내 색깔대로 내 모습대로


 이렇게 대부분 취업과정이란 수비적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회사라는 틀에 걸리지 않는 모나지 않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안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너무 단순한 그 이유는 바로 취업이 매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스펙'이란 단어에 나를 끼워 넣는다면 '학점 4.0점 / 토익 900 이상 / 스페인어 DELE 중급 자격증 / 인턴 경험 있음'정도였고 스스로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여느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연이은 서류탈락의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취업준비를 오랫동안 공을 들여 한 사람들 속에서 감히 내가 바로 취업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면접에 가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후회가 남을 만한 일은 하지 않기로 했던 여행이 준 교훈이었다. 아주 운 좋게 최종면접에 금융회사 2곳을 가게 되었다. 그중 한 곳의 최종면접을 갔던 날이었다.


"저는 미국회계사 자격증과 CFA Level 3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고, 금융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CFA Level  2 자격증이 있으며, 다수의 회사에서 인턴도 많이 했습니다."


 저 자격증들은 지금도 따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자격증들이다. 사실 나는 2년 반동안 놀았기 때문에 저렇게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과는 별개로 내 경험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호주에서 워홀로 돈을 모아서 세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이지만 제가 스스로 해냈다는 경험을 통해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임원진들이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면접관들도 업무에 지친 사람들이고 자기가 못 들어본 새로운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이 가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시종일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았다는 점과 새로운 것(예를 들어 스페인어)을 배우는데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책임감이 있는 모습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런 점에서는 회사생활에 맞추어 나를 좀 깎기도 했다.


 취업 준비과정은 어렵고, 면접 또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취업 때문에 1년을 넘게 휴학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취업을 준비한 시간만큼 내가 보낸 시간들도 의미가 있었으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결과는 받아들이기를


 2학기 도중에 최종 면접을 다 보고 더 이상 대학교 수업을 듣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또 여행을 갔다. 베트남 하노이에 베트남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가고 싶었고, 취업 준비를 나름 열심히 한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남미사람들을 보며 나도 나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최종면접을 본 A, B 두 회사 중에 내가 합격하기를 바라는 회사는 A였다. 그래서 면접 준비를 할 때도 A 회사를 가기 위해 신경을 더 많이 썼다. 그 회사를 직접 가보기도 하고 직원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으며 자료 조사도 상당히 많이 했다. 반면 B 회사는 스터디할 때 누가 자소서를 쓴다고 하길래 몇 시간 만에 급조해서 썼고, 면접 준비도 그냥 인터넷에서 자료만 찾아보고 준비해서 갔다. B회사보다 A회사에 합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하노이에 짱띠엔이라는 유명한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거기서 아무 생각 없이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결국 B 회사에 합격하고 A 회사는 떨어졌다. 둘 다 떨어진 거보다야 나은 시나리오였지만 그냥 인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간절한 사람에게 꼭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도 많고, 간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냥 주는 경우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A회사보다 B회사에 간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후회가 없었다. 나를 깎아서 취업준비를 했다면 후회했겠지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인생도 하고 싶은 대로 결과는 결과대로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나 덧붙이자면 아무도 체게바라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여행은 취업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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