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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3. 2024

[직장] 회사생활은 올림픽이다

전 종목 동메달리스트가 되어볼까

회사는 서커스다


 여행만 다니다가 얼떨결에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물론 그 전날까지 일본에서 여행을 하다가 다음날에 신입 연수원에 들어갔을 정도로 입사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채문화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동기들과 놀면서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었고, 경제 매크로나 반도체/배터리 등 산업에 대해서 받는 교육들은 무척 재미있었다. 연수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신병 훈련소에 있는 기분이었고, 앞으로 나의 발령지와 발령지의 사람들은 어떨까 많이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듯이 발령은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 내버리고 말았고, 나의 최초 지망지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업 직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뭐든 우선 닥치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힘든 선배들도 있을 수 있고 매일 야근하면 어떻게 할까 나름의 생각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선배들은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야근하기 싫어하는 건 누구나 매한가지였다.


 대학과 회사의 차이라고 한다면 대학은 돈을 '내기' 때문에 수업을 들을 '권리'가 있는 것이고, 회사는 돈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대학에서는 교수님이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면 그냥 안녕 하고 수업을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달랐다. 자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행해야 했다.


 헤드는 대체로 올바른 솔루션을 내놓기는 했지만 가끔 생뚱맞은 솔루션을 내놓았고 직원들은 그게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는 이런 회사생활을 강홍립의 명나라 파병 같다고 생각했다. 광해군 시기 명나라는 청나라와 전쟁에 휘말리자 조선에 구원병을 요청한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국운은 이미 기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홍립에게 군사를 주어 청나라와 싸우는 척하다가 청나라에 투항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역사 가설 중 하나이다.) 강홍립은 어차피 그걸 완수해 낼 마음이 없었지만 그냥 시켜서 하는 둥 마는 둥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회사생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난센스들을 볼 때마다 회사생활이 서커스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서커스단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서커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구나 자신의 무기가 있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우대받고, 회사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들이 인정받는다는 믿음이다. 이것이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 때 영어수업으로 회계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의 연구주제인 IFRS 국제회계기준이 정말 재미있어서 연구실에도 찾아가서 질문을 하곤 했다. 당시 나는 영어가 많이 부족했고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많았지만, 교수님과의 친분(?)과 회계에 대한 관심으로 좋은 학점을 부여받았다.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 정말 특이한 A 부장님이 있었다. 부서의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았던 평정심을 가졌던 그 부장님은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였다. 업무능력으로 친다면 평균적인 업무능력을 발휘하였으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다. 헤드들은 그분의 부동산 투자 권유로 인해 땅이나 아파트를 샀고 결국 2020년대 부동산 폭등기가 오면서 그분은 회사 업무와 다른 부분에서 인정을 받으며 조직에서 입지는 더욱더 나아졌다.


 그리고 능력주의의 끝판왕으로 일을 무척 잘하셨던 B 부장님이 있었다. 그 부장님은 업무능력이 정말 뛰어나셔서 대부분의 중요업무들이 그분께 몰리고는 했다. 다만 하던 프로젝트들이 잘 안 되기도 했고, 중간에 헤드가 다른 곳으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좀 애매한 상황에 처하시기도 했다. 결국에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에 가셨고 원래 일을 잘하는 사람은 종목을 바꿔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결국에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두 부장님을 보면서 회사생활에 대한 저마다의 무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신봉했던 능력주의는 그 무기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회사생활은 올림픽이다


 대학교를 가기 전까지 대학이라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잘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진학하자 도리어 말을 바꾸시곤 했다.


"공부 1등이 사회생활 1등이 아니야. 공부만 잘해서는 안되고 인간관계도 좋고 운도 따라줘야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단다. 그 점을 명심하렴."


 직장은 일을 하러 오는 곳이고 그게 직장생활의 근본이므로 능력이 우선해야 하는 것은 맞다. 직장을 몇 년 다녀보니 대부분 타고난 머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잘못된 것은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저 의지의 차이가 결국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만으로 직장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능력주의는 직장생활이라는 관문의 주요 종목이기는 하나 그 종목의 금메달에만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안 된다. 적당한 수준의 인간관계, 눈치, 적절한 타이밍 등등의 종목에서도 최소 동메달 정도는 필요하다. 특히 대부분의 업무는 상대방과 나와의 상호 간 호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상사가 하루종일 무슨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는 눈치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는 전 종목 동메달리스트가 되어보기로 했다. 모두가 금메달을 따러 달려갈 때 동메달만 모으는 나만의 길을 가보는 것이다. 금메달을 따고 싶은 게 있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직장생활은 올림픽이다. 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못 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 없다. 다른 종목을 잘하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올림픽의 화룡점정은 바로 '운'이니 운이 찾아올 때마다 운을 타고 훨훨 날아가자.


맛잘알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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