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까짓 게 뭐예요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의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남한산성에 꼼싹달싹하지 못하도록 갇힌 인조는 불안감에 빠지고 조정은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와 지금이라도 화해를 도모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화파의 갈등을 그린다. 척화파인 김상헌이 어찌 치욕스럽게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냐고 주화파인 최명길을 비판하고, 최명길은 이렇게 대답한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분명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결국 인조는 성 밖을 걸어 나가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는 역사 속 슬픈 이야기이기는 하나 인조의 아들이었던 효종은 이를 계기로 이를 갈며 청나라를 공격하고자 북벌을 준비한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네 인생에도 주는 울림이 있다. 지금까지 나를 돌아보았을 때 반수/삼반수 실패, 교환학생 실패, 처음 호주에 갔을 때 구직 실패, 원하는 곳 발령 실패 등등 인생의 셀 수 없는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다. 그러나 반수를 실패했기에 여행을 꿈꾸었고, 교환학생을 실패했기에 워홀이라는 길을 갔으며, 호주에서 구직을 못했기 때문에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사정사정하다가 일자리를 구했으며, 원하는 곳에 발령받지 못했지만 결국 기회가 온 끝에 원하는 부서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도 수많은 실패가 있을 것이고, 꽃길보단 진흙탕 길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이다. 망한 곳에도 길이 있으니 진흙탕 길을 꿋꿋이 나아가면 될 일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생에는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20살 때 군대에 가고 20대 초중반 정도에 군대를 가고 30대 정도가 되면 결혼을 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런 길을 어느 정도 적당히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인생은 혼자 가면 외롭기 때문에 친구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뭐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한다. 어찌 보면 그 '때'에 맞춰서 잘 살아가는 것도 본인이 타고난 운이다.
다만 이 '때'에 너무 집착하면 인생이 좀 고달파지기는 한다. 왜냐하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고 타인의 시선과 조언에 얽매여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하게 생각해 보면 누구나 '때'에서 뒤처질 수 있고 매번 정해진 속도로 따라가는 것이 더 비정상이기는 하다. 남들보다 좀 늦더라도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퇴직하고 혼자서 여행 다니는 50, 60대 아저씨를 볼 때마다 오히려 멋지다는 생각도 했다. 때론 '때'를 거스르기 때문에 멋있을 수 있는 사람도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교를 10년 동안 다니고 30살에 취업을 한 나로서 '괜찮다. 다 자기 속도가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때'를 맞춰사는 것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진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어릴 때라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세상을 떠날 때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다 해볼걸.'이라고 한다. 그 점에서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자면 사람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고, 그냥 생각한 대로 해도 그렇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도 첫 수능을 보고 친구네 집에 가서 인생이 망했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곤 한다.
인생은 살면 살 수록 정답이 없다. 기출문제를 푼다고 해도 다음 시험은 전혀 다른 문제가 나온다. 과정과 결과가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결과는 정할 수 없으며 내가 어떻게 할지 과정만 정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흘려보내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사는 게 단순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인생 그까짓 게 뭐예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잖아요.
거창한 건 없지만 담담하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과 깨달은 바들을 생각해 보고 글로 남겨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깨달음을 뿌리로 앞으로의 나날들도 살아가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록해 보았다. 그런 뿌리들을 심어놓는다고 해봤자 어차피 흔들리는 게 인생이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흔들리고 정신 차려 돌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오랫동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