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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08. 2024

[대학] 사회학 해서 뭐 먹고살래?

가장 쓸모없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이다

10분의 진로상담으로 결정된 나의 10년


 수능을 마친 나도 사실은 철없는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나의 수능점수는 내가 희망하던 K대학교를 가기엔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선생님과의 진로상담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내 점수에 맞춘 가로선을 따라 위치한 학교와 학과들을 훑어보았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대학 배치표'라고 한다.)


"그럼 C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써보는 건 어떠니?"


"네 선생님. 그런데 사회복지학과를 가면 먹고는 살 수 있나요?"


선생님은 배치표의 가로선에 위치한 동일 과들을 눈으로 훑으셨다.


"가만 보자. 그러면 사회학과로 쓰자."


"네 선생님 그렇게 지원할게요."


 이렇게 나는 10분 동안의 진로상담으로 앞으로 10년을 다닐 대학교의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다.(군대와 각종 휴학을 합쳐서 총 10년을 대학생 신분으로 있었다.) 물론 나는 C대학으로 OT를 가는 차 안에서도 나는 반수를 해서 K대학에 들어갈 거라고 확신했으며 인문대학을 탈출하여 상경계열로 새 출발 하는 나의 미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과를 결정할 때 가볍게 결정할 수 있었다.




사회학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사람들이 가끔 사회학과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복수전공인 금융공학은 먹고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사회학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하곤 한다.


 첫 수업의 시작은 칼 마르크스였다.(이상하게 사회학과 교수님들은 '맑스'라고 적는다. 나는 마르크스를 좀 아는 사람이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으로 분리되어 착취를 당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라고 비판했다. 사실 마르크스는 지금 생각해 보면 20살의 내가 배우기엔 너무 심오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배움들이 그렇듯이 당시에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 살아가는 데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왜? 왜? 왜?라고 물음표를 던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피곤하지만 물음표를 던져가며 마음속의 답을 얻은 사람은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된다.


 하지만 당시에 얼떨결에 선택한 사회학에서 공부의 이유와 즐거움을 찾지는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인생의 마주침은 뜻밖의 곳에서 오게 된다.




대학생활 최고의 수업 기초중국어


 내가 도대체 저 수업을 왜 신청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수님은 정말 중국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어렸을 때 패왕별희나 영웅본색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중국유학을 결심했고, 베이징에서의 유학생활도 너무 즐거우셨다고 말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정말 즐겁게 하셨다. 사실 기초 중국어이고 교양수업인 만큼 그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될 법 한데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열의를 다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때 중국어를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인 수업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미리 공부하게 된 적은 처음이었다. 수업을 가는 지하철 내내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진심으로 기대가 되었다. 이렇게 내면의 동기가 나오고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추후에 나의 적성과 관심사는 외국어 공부라는 걸 알았고 나중에 스페인어를 배울 때도 정말 너무 자발적이고 재미있게 공부했다.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시간당 4달러로 개인교습을 받을 수 있었고, 선생님이 시킨 것도 아닌데 스페인어로 매일매일 일기를 쓰기도 했다. 새로운 언어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이 언어공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뜻밖에 들은 교양수업에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공부는 세상이 말하는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하는 세상의 쓸모가 있는 공부는 아니었다. 




장자의 무용론 (무용한 것이 유용한 것이다)


다음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莊子行於山中(장자행어산중)

장자가 산 속을 걷다가 


見大木枝葉盛茂(견대목지엽성무)

큰 나무를 보았는데 가지와 잎이 매우 무성했다. 


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벌목자지기방이불취야)

그 옆에 목수가 있는데도 베려 하지 않았다. 


問其故(문기고)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曰無所可用(왈무소가용)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莊子曰(장자왈)

장자가 말했다. 

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차목이불재득종기천년)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 구나.   


 장자는 어떤 나무를 보고 쓸모가 없어서 타고난 수명을 누린다고 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쓸모가 있는 나무는 빨리 베인다는 것이다. 장자는 이처럼 쓸모가 없는 것들이 오래가고 살아남아서 자신의 의미를 다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옛날에 장자는 쓸모없음에서 오는 유의미함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세상의 쓸모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의 중국어 공부는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그 수업을 마쳐봤자 일상회화 몇 마디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스페인어를 공부해서는 중남미 해외영업 직무에 지원해 보면서 쓸모를 따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 분야에 취업을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쓸모라는 입장에서 보면 나의 스페인어도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수험생활과 사회학이 가르쳐 주지 못한 쓸모를 생각하지 않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진정한 즐거움은 쓸모없음에 온다. 진정한 즐거움은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대학생활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스페인어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종기스(종합 기초 스페인어)! 떠날 때 같은반 한국 아저씨한테 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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