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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27. 2023

상대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

믿거나 말거나 


방금 1초 전에 분명 엄마인 내가 말을 했는데 듣는 둥 마는 둥하는 아들을 보면 화가 머리 꼭대기도 모자라 곧 머리뚜껑이 열릴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1회성으로 못 들었거나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넘기려다가도 그런 일이 반복되면 화를 더 참기가 힘들어진다. 혹시 내 아이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인데 무심한 내가 진료받을 기회도 주지 않고 행여 방치를 한 건가 싶은 자책까지 든다. 

그러다 아래 영상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 남자의 귀는 여자의 귀와 다르다는 것을. 



https://youtu.be/vCYgtuAmEhQ




남자아이는 안타깝게도 여자아이와 달리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바로 전 말을 했음에도 금시초문이라는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언제 말했는데?" 할 정도로 딴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바로 등짝 스매싱이 나간다. 아들은 억울하다. 자신은 결단코 들은 적이 없는데 다짜고짜 이유불문하고 맞은 것에 대해 너무 분하다. 점점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엄마들 관점에서 아들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는 게 낫다. 하지만 무시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럼, 엄마라는 대상만 "무시"가 용납이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긴 어느 누가 무시를 좋아하겠냐마는 그중 유독 한국인은 "무시"를 참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연구결과를 본 기억이 난다. 굳이 자료를 디밀지 않아도 "무시"라는 단어는 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지니 구태여 연구자료를 가져오는 것도 무의미하겠다. 


"잠 잘 자면 수명 늘어나"

"밥 골고루 먹으면 오래 살아"

와 같은 기사 제목과 거의 비슷하게  


"무시당하면 기분 나빠" 뭐 이런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으려나?



이토록 싫은 무시를 상대로부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럼 어찌해야 할까?  




우선 실없이 웃으면 안 된다. 

별 웃기는 상황도 아닌데 실실 시도 때도 없이 영구처럼 혹은 맹구처럼 웃으면 안 된다. 사람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기 때문인데 상대가 막 대해도 화는커녕 "하늘에서 눈이 와~~~요~~흥~~ 큭큭" 하고 웃어 넘겨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웃음이란 건 전염이 잘 되는 특성이 있어 자꾸 웃으면 그 사람의 주변사람도 같이 웃게 되는 참 좋은 전염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자꾸 웃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은근하게 자기보다 못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단정 짓고 우선 깔봐도 되겠지 하는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뭘 많이 알아야 한다. 

모르면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모르는 게 당연히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씩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에이~~ 이것도 몰라?" 아... 내 안의 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뭘 많이 알아야 한다"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모른다는 걸 숨겨야 한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몰라도 아는 척, 잠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척, 연기를 하면 된다. 그렇게 멋들어지게 연기를 하다가 오래간만에 아는 부분이 나오면 참지 말고, 옆 사람에게 뺏기지도 말고 손을 높이 쳐들고 발표하는 것처럼 또박또박 자신이 알고 있음을 반드시 어필해야 한다. 모르는 게 밝혀지면 그날로 끝. 그 사람은 바로 무시해도 되는 무식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몰라도 가르쳐야 한다. 

뭘 많이 아는 척에 성공을 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다음 코오스~ 아는 척으로 끝내면 안 된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 이 사람 뭐 돼?"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에 대해 소질이 없다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해야 한다. 사람은 역할극을 하다 보면 과몰입을 하는 경우가 꽤 자주 생기니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를 시전함으로써 선생의 말은 복종해야 한다는 은근한 명제를 깔고 갈 수 있다. 당연히 선생님을 무시할 학생은 없다. 되바라진 일진 말고는.



남을 마구 웃겨도 안 된다. 

웃기는 사람을 보면 무시하는 마음이 사람들마다 깔려 있다. 한데 아주 예전으로 거슬러 조선시대 판소리, 마당놀이 등등 해학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옛 전통을 살펴보자. 판소리, 마당놀이에 우스개 소리 한마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기만 하다면 지루해서 사람이 모이기나 할까? 어찌 모였다 한들 다 끝나기도 전에 모두 일어나 집에 가는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까? 해학과 풍자를 이용해 나라님의 소재를 갖고 와서라도 계속 쉴 틈 없이 관객을 웃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 있는다. 하지만! 웃음을 준 사람들에 대한 대우는 어떤가. 한 없이 무시한다. 웃기는 사람이라며. 그러므로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구 웃기면 안 된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지 않게 하는 방법. 

우선 이렇게 4가지 정도로만 추려보았다.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반대로 무시를 당하지 않는 방법을 이렇게나 잘 알면서도 나는 무시당할 만만한 짓만 계속해왔다. 틈만 나면 웃고 틈만 나면 웃겨대고 틈만 나면 삶의 재미를 찾았다. 그래서


나란 사람은 무시당해도 싼 건가?


나씨나길

나는 씨X 나의 길을 간다. (갑작스러운 두 글자의 욕에 헙! 하고 놀라셨을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무시하거나 말거나. 

오늘도 실실거리며 쪼개고 웃으련다. 


음... 어딘가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내가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 쓴다는 걸 상대가 알게 할 수는 없나? 

그것이 또 앞으로의 숙제가 되겠다. 



어찌 되었든 

웃기는 사람을 우스운 사람으로 보지 않길 바란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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