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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29. 2023

맛있다고도 맛없다고도 못하는 이 내 마음

아실랑가요

까톡왔숑~ 까톡왔숑~

간만에 어머님께 카톡이 왔다.


약식 맛이 어떠냐~?

네. 맛있어요~ 애들이 약식을 밥처럼 숟가락으로 퍼먹어요~


방금 또 약식 했당. 아범 오늘 쉬냐?

네~ 오늘 쉬어요.


"했다" 가 아니라 "했당"을 쓰신 걸 보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잠시 정적.


띠링 띵띵~ 남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남편은 "네~ 네." 하고 금세 전화를 끊는다.


그러더니 끙차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린다.

구시렁구시렁 하는 소리도 들린다.


"여보~~~ 왜~~~?"

하고 물었고, 뚜껑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뭐라는지 잘 못 알아듣겠다. 다시 물었다.


"뚜껑?? 왜??"


"드럼 뚜껑이 안 열린다고 와서 좀 열어달라시네.

 아니 내가 지금 뚜껑 때문에 거길 가야 돼?

 근방에 철물점 가서 오프너든 뭐든 사서 해결하시면 되지. 어휴..."


가기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남편은 엊그제 어머님 댁을 방문해서 약식이며 나물 반찬, 콩물 등을 받아 왔었다. 갔다 온 지 이틀 만에 또 오라는 소리가 달갑지 않을 터. 게다가 어머님댁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아닌 차로 1시간은 족히 달려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서 사는 게 아니니까 왕복 2시간을 길에 뿌려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힘들게 만들어 주신 음식에 대한 감사인사로 "아이들이 잘 먹어요~"라고 한 건데 그게 문제였다. 손주들이 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니 기쁘고 힘이 나셔서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음식을 또 하신 거다. 맛있게 냠냠 먹을 손주들의 모습을 떠올리시며. 몸이 좀 힘드셔도 피곤을 무릅쓰고 앉았다 일어났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시며 음식을 만드셨을 모습이 눈에 훤하다.


이런 상황이니 음식을 받으면 "맛있어 죽겠어요~"라고 하기도, "맛이 니 맛도 내 맛도 없고 그저 그래요~"라고 할 수도 없다. 맛있으면 또 만드실 테고, 맛없다고 하면 상처를 받으실 테니. 아! 물론 상처받으실 스타일은 아니시다. "너넨 다시는 음식 안 해 줄 거야! 앞으로 국물도 없어!"하고 오히려 호통을 치실 분이니까.


아들자식에게 뚜껑이 안 열린다고 얘기하면 냉큼 올 거라 믿으시곤 "와서 좀 도와줘라." 하셨겠지만 난 또 남편의 입장이 너무 이해가 간다. 거절이라곤 좀처럼 하지 않는 효자 아들이라 전화 통화로는 "네~" 해 놓곤, 전화 끊고는 몸이 피곤해 가기 싫어 밍기적거리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중간에서 참 마음이 편치 않다.




며칠 전에 1개에 1만 원이나 하는 고급 손톱깎이를 남편이 샀었다. 손톱이 튀지 않는 손톱깎이라는데 "설마 안 튀겠어? 손톱깎이는 튀니까 손톱깎이지~ 허위광고는 아니어도 과대광고에 자긴 낚인 거야~" 하고 비웃어줬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그건 손톱이 튀지 않았다. 트랜스포머 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것처럼 손톱깎이 내부에 손톱이 담길만한 조그만 공간 하나가 변신으로 더 생긴 것뿐인데 희한하게도 깎여나간 손톱은 모두 그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였다. 어젯밤, 막둥이가 신기하다며 그걸로 손톱을 깎고 인사하고 들어가 잤는데...


아이들은 모두 자고 남편이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손톱깎이를 보고는 상상도 못 한 대사를 했다.


"귀여운 것."

"뭐가?"

"이거 다 깎고 통 안에 모아진 걸 안 버리고 잤네."

"변신을 어떻게 시키는지 몰랐나 보네. 근데 안 버린 게 뭐가 귀여워?"

"그냥~ 귀엽잖아."

후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더니 그런 의미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이어 말한다.


"내가 이렇게 아이를 낳고 살 줄은 몰랐어."


아비로서 아이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여보.

이틀 전에도 가고 오늘도 또 가니 길가에 난 풀까지 다 외울 정도로 오가는 길이 지겹고 귀찮을 테지만, 기왕 간 거 어머님한테 툴툴대지 말고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와.

어머님은 아마 자기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고 사랑스러우셔서 계속 보고 싶으신 걸 거야.

자기가 낳은 아이들까지도.


힘들어도 힘내 여보~

파이팅~'




고슴도치 가족







*함함하다 :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

*고슴도치 네 마리 모두 pixabay 에서 데리고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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