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친구들 손에 이끌려 나이트라는 곳을 두어 번 가 본 게 다였던 나는 휘황찬란한 노래방 조명을 보며 '이건 좀 야한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런 곳을 이제 겨우 초등 4학년과 6학년이 된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도 되긴 되는 걸까 괜히 찔린다. 보무도 당당하게 문 앞까지 씩씩하게 왔으면서 어느새 쭈뼛거리다가 결심한 듯 노래방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디밀어 주인아저씨한테 우리 아이들을 살짝 보여주며 묻는다.
"얘네들 들어와도 되는 데에요?"
노래방인데도 불구하고 노래를 안 부르는 사람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예쁘지만 나이가 조금 많은 언니들이 방에 들어가서는 노래보다는 몸짓에 더 집중하던 장면을 영화에서 본 기억이 나서 괜히 머뭇거렸다. 혹시나 여기도 그런 곳이려나. 예쁜 언니들이 사장님들하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는 데라면 얼른 뛰쳐나오려고 한 발은 가게 안에, 한 발은 가게 밖에 두고 물어본다. 그러자 주인장은 흔쾌히 "그럼요~"하고 우리를 데리고 방 안내를 해 주고는 문을 닫고 나가주신다.
고 3 때
공부하다 지치면 나의 일탈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이 사회는 이상한 거 투성이라며 공부하기 싫다고 학교도 안 가고, 가출도 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던데, 집 나가면 개고생임을 나는 진즉 눈치채고 불평불만이 있어도 끝까지 집에서 버텼다. 그러다 공부가 힘들 때나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났을 때는 노래방에 가서 기분 전환을 했더랬다. Music is My Life. 그래, 그땐 노래가 나의 인생 전부인 것처럼 열심히도 불러 젖혔다. 젊은 성대는 4시간을 내리 불러도 목소리가 쉬지도 않았다. 자칭 노래방 고수로 착각했던 나는 노래방에 갈 때면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친구들과 가지 않았다. 혼자 노래방에 가면 장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노래방에 가면 원치 않는 어설픈 화음을 누가 넣는 일이 없어서 참 좋았다. 또 내가 찜한 노래를 누가 같이 부르다가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가로채 부르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한 곡씩 번갈아 부르기로 되어 있는 무언의 규칙이 욕심 많은 친구에 의해 깨지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그냥 푸근했다. 여유 있게 부르는 것이.
아, 잊고 있었다. 마냥 여유 있지만은 않았다. 그건 노래 예약을 해야 주어진 시간을 알뜰히 쓸 수 있는데 나 혼자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니 예약할 시간이 없다는 게 조금 압박이었다. 노래방이란 곳은 모름지기 중간에 "쉼"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곳이거늘. 둘이라면 상대가 노래 부르며 심취해 있을 때 귀로 듣는 척, 호응하는 척하면서 내가 부를 곡을 선곡하고 예약할 수 있는데 여유가 없다는 게, 그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난 굴하지 않지. 의지의 한국인 중에 상위 10%에 속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에게는 간주시간이 주어져 있었지. 베테랑 가수처럼 집중하여 노래를 부르다 말고 간주 타임이 되면 황급히 노래방 책을 촥 열어 열심히 그다음 부를 곡을 다다다다 예약 버튼을 눌러댔다.
마이크 두 개 중 놀고 있는 마이크 하나에게 "넌 왜 농땡이니?" 그래가며 한 손에 마이크 한 개씩 들고 입에다 마이크 두 개를 착 갖다 대고 참 열심히도 불렀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일탈이 아니라 중노동이었다. 입으로는 노래 불러야지, 뇌는 다음 부를 노랠 기억해 내야지, 손은 책장 넘겨야지, 귀로는 내 노래 들어야지. 행복한데 힘든 느낌이었다.
돌아가는 싸이키 조명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
당연히 놀랄 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 본 노래방이니.
자리에 앉은 남편은 노랗고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이 연상되는 노래방 책을 탁 잡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를 노래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쉼 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1분이 남았을 때 가장 긴 노래를 타이밍도 적절히 스타트 버튼을 눌렀던 시절을 보냈으니 당연히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 왕년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저리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건가. 연애 시절 저 사람이 자신 있어하던 노래가 제목이 뭐였더라 하며 기억을 떠올리는 중인데 벌써 예약 버튼을 남편이 꾹꾹 누른다.
엥? "질풍가도" 전주가 나온다.
이건 막둥이 애창곡인데? 틈만 나면 불러 젖히는 이 노래를 집에서 매번 아들의 라이브로 들어오느라 이젠 나도 가사를 외울 판인데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멍석을 제대로 깔아준 거다.
신이 난 막둥이, 손뼉 치는 딸내미.
뱅글뱅글 돌아가는 미러볼은 지구처럼 보이고 마치 우주에 덜렁 우리 넷만 남은 듯하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외롭지 않고 어깨춤이 절로 난다.
아들이 부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말고 다시 또 고개를 푹 숙이는 남편. 아이가 잘 부르던 노래를 또 찾아 책을 판다, 파. 아주 후벼 판다. 노래 제목이 기억이 잘 안 날 때는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해 가며 노래방 책을 넘기느라 바쁘다. 노랫소리만 아니면 도서관인 줄.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원인 줄.
그 모습에 웃겨 큭 하고 웃다가 내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니 남 말 할 때가 아니다.
마이크를 한 시도 놓지 않았던 내가,
부르고 불러도 못 다 부른 노래 아까워서 간주 나올 때 허겁지겁 노래책을 뒤적여 찾던 내가,
마이크 두 개를 들고 에코 짱짱하라고 입에 바싹 대고 불렀던 내가,
마이크는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탬버린 하나 들고 흔들고 있다.
탬버린만 찰랑찰랑 흔드는 모습이라니.
어제는 고3이었다가 오늘은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잠시 타임리프를 하는 느낌까지 든다. 내가 날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광경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려 한껏 노력하는 신이 우리 딸에게는 그림 실력만 주고 노래 실력은 안 주셨는지 딸은 입을 꾹 닫고 박수만 치고 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안 들릴까 싶어 딸 귀에다 대고 "딸도 하나 불러 봐." 했지만 부끄러운지 손사래만 친다.
그 와중에 막둥이는 신이 났다.
평소 자기가 잘 부르던 노래가 자동으로 끊이지 않고 예약이 되니 마치 A.I가 탑재된 최첨단 노래방처럼 느껴졌겠지.
아빠라는 사람은 아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쳐다보느라 또 연신 곡을 찾아 예약 버튼을 누르느라 바쁘다.
어느덧 1시간이 흐르고 서비스로 넣어준 30분도 흘러 마지막 곡으로 피카추 노래를 부르는데 이 곡도 그간 얼마나 불러댔는지 피카추에 "피"자도 몰랐던 우리 부부는 어느새 같이 따라 부르고 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물끄러미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본다. 아이를 따라 신나게 부르는 아빠의 모습, 수줍은 듯 조금씩 따라 불러 보는 딸의 모습, 신이 난 주인공이 되어 힘차게 부르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고 가슴이 뿌듯해진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막 대학생이 되고 두 살 터울이었던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노래방에 가려다 엄마, 아빠도 모시고갔던 날이 문득 떠오른다.
엄마도, 아빠도 흥이 많은 한국 사람이니 노래를 듣는 것보다는 부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 텐데 왜 그러셨는지 그냥 듣기만 하셨다.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웃기만 하셨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노래는 불러야 맛인데 엄마도, 아빠도 노래 좀 부르시라고 자꾸만 권해도 왜 그리 안 부르고 우리 삼 남매가 노래 부르는 걸 계속 바라보기만 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생기고 마냥 철부지이기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엄마가 되어,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그 마음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