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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23. 2023

젓가락 두 짝이 안 똑같아요

나는 혼수를 제대로 해 가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웨딩홀에서 트럼펫 축하연주까지 받고 호텔 식사까진 아니더라도 결혼식 뷔페로 하객들을 대접했으니 간소한 결혼식이라 할 순 없지만 혼수만은 최대한 간소하게 했다. 남자는 집을 장만하고, 여자는 집 안의 살림을 채우는 게 혼수라고들 하는데 결혼 전 나는 자취를 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살림은 이미 있었기에 신랑이랑 같이 살면서 하나하나 업그레이드시키며 장만해 가는 것도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둘이 사는 살림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은 친정에서 조금, 시댁에서 조금씩 받아가며 살았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옛날 사람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보다는 새 물건에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수저도 구태여 한 세트를 살 필요가 없었다. 남편과 나 둘 다 내향적인 인간이라 집에 누굴 자주 초대하는 성격도 아니고 단 둘이서 사는데 12인이 한꺼번에 들이닥쳐야 필요할 12쌍의 숟가락, 젓가락이 굳이 필요 없기도 했다. 그런데 친정에 갔다가 새 수저를 10모 받아 오고, 시댁에서도 반짝반짝한 수저를 8모 받아 왔더니 입은 두 개뿐인데 수저는 통에서 차고 넘쳤다. 단, 모양이 다른 두 종류가 섞여 있으니 같은 짝을 찾아 맞추기가 조금 번거로웠을 뿐.



세월은 금세 흐르고, 나와 신랑 사이에 아이 둘이 태어나 둘이었던 우리는 넷이 되었다.


아이 둘과 함께 하는 식사 준비는 착착 진행되니 준비라는 말도 무색하게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요리에 재미를 붙인 남편이 음식을 만들고 "다 됐다~" 외치면 나는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을 꺼내 한 끼 먹을 만큼 접시에 꺼내 담고, 딸아이는 물을, 막둥이는 수저를 한 움큼 가지고 와서 밥상에 놓는다. 밥을 다 먹으면 딸아이와 막둥이는 다 먹은 식기를 싱크대로 가져가 물에 담가놓으면 내가 가서 설거지를 한다. 아주 분업화가 잘 된 공장 같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므로 여느 가정집에서 흔히 나오는


"밥은 나 혼자 먹니? 밥을 차리는 건 몽땅 내 일이지? 아무도 손 하나 까딱 안 하지?"

"수저나 물이라도 식탁에 좀 가져다 놓으면 안 될까?"


라고 말할 것도 없이 다 함께 밥을 차리는 이 모습은, 모든 가정에 도입하고 전파하고 싶을 만큼 언제 보아도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모두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 젓가락을 들고 밥상에다가 톡톡 세워 드는데 이런, 젓가락이 짝짝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면 재미없는 걸 알고 그러는 건지.


짝짝이 젓가락. 출처. shutterstock



한복이 일상복이던 그 옛날, 배곯은 거지에게 동냥을 줄 때도 젓가락은 짝을 맞춰 주던데, 반찬은 변변치 않아도 젓가락만큼은 짝을 정확히 맞추어 밥을 넣은 바가지 위에 얹어 주는 거 같던데, 나는 걸인보다 못한 삶인 것 같아 딱 기분이 상하려고 한다. 반찬이 얼마나 맛있을까 젓가락을 탁 집었는데 젓가락 하나는 키가 크고 다른 하나는 키가 작은 놈을 동시에 손에 잡으면 둘의 키가 안 맞는 게 참으로 마뜩잖았다. 쌍쌍바를 두 손에 잡고 똑~! 하고 정확히 반을 갈라줘야 하는데 둘 중 하나가 빈약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 개운치 못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늘 나는 수저 담당(때때로 물과 수저 담당이 바뀜)에게


"거지도 이렇게 짝짝이로는 안 먹는데, 우리는 왜 거지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라고 힘주어 말했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말을 했으니 오늘은 아니겠지. 젓가락 짝이 당연히 맞겠지 의심도 하지 않고 잡으며 밥상에 탁 소리를 내며 키를 맞추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짝짝이다. 아... 도대체 나는 맨날 누구랑 얘기를 하는 건지.


여러 번 같은 일이 반복되니 내 표정이 점차 헐크로 변하려는데 수저를 담당했던 딸아이가 이야기한다.


"어!! 나 젓가락 네 모 모두 짝 맞춰서 가져왔는데??"


"그래?"


그럼 내 젓가락 짝지는 다른 손에 가서 또 안 맞는 짝꿍과 짝을 이루고 슬퍼할 텐데 어디 가서 헤매고 있나 누구 손에 들려있나 둘러보는데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바로 보인다.

남편의 손에 쥐어진 짝짝이 젓가락...

아이들은 맞게 들고 있나 봤더니 응?

딸 손에 들린 젓가락도 짝짝이.

막둥이 손에 들린 젓가락도 짝짝이다.



아니. 이런!

키 큰 젓가락 2모, 키 작은 젓가락 2모를 정확히 짝을 맞춰 가져왔는데 식구 모두가 몽땅 다 짝짝이로 들고 있었던 것이다.

짝짝이로 들고 반찬을 집어도 누구 하나 아무도 뭐라 안 하는 이런 쿨한 사람들 같으니.

쿨한 건 둘째치고 어떻게 이렇게 죄다 다른 짝으로 들고 있는 거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한데 젓가락이 자기 짝꿍하고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좀 서글퍼보인다.

멀지도 않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안타까운 짝사랑 모습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 제발 짝 좀 맞춰 주시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라는 노래가 있긴 하지만 애초에

짝은 제대로 갖춰진 젓가락을 주고서 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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