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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24. 2023

바나나가 사람일 수도 있다고?

드라마 "블랙독"을 보고

배우 서현진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 같다. 그저 평소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나 연기합네~ 하고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하고 로봇연기하듯 하는 어색함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서현진이 연기할 때는 혹시 배우에게 들이미는 카메라가 한 대도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믿고 보게 된다. 정작 본인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연구하고 연습하고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출처. 핀터레스트


표정 연기, 생활 연기, 코믹 연기, 그리고 귀에 때려 박힐 듯한 또렷한 딕션은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이 철철 넘쳐흘렀기에 서현진이 출연한 "식샤를 합시다", "또 오해영", "뷰티 인사이드"등의 드라마를 모두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시청하면서 역시나 탁월한 재능에 감탄하고는 그녀의 차기작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중 "블랙독"이라는 살짝 우울한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전 드라마에서 보여 주었던 그녀의 상큼 발랄하고 당찬 이미지와는 정반대 역이라 이번에도 과연 맡은 역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며 응원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기간제 국어 교사였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시험문제가 논란이 된 일인데 사건 이름하여 '희대의 바나나 사건!'


국어 시험 문제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 게 화근이었다.


 '성순이가 바나나와 사과 2개를 샀다.'

(독자님들은 잠시 고개를 들어 바나나와 사과의 개수를 결정해 본다면 아래 다른 해석에 대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문제가 없는 지극히 단순한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성순이가 바나나 1개와 사과 2개를 샀다.'라고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극 중 여러 학생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고 서로 자신의 해석이 맞다며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 이르렀다.


 "성순이가 바나나 1개와 사과 1개, 합해서 2개를 샀다."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학생들도 있고

 "성순이가 바나나 2개, 사과 2개, 각각 2개씩 샀다."라고 해석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뭐 여기까진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도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성순이가 바나나와 함께 사과 2개를 샀다.

즉, 바나나를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었다. 우왓!


국어 선생님들은 물론 타 과목 선생님들까지 그건 있을 수 없고,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며 일축하려 했지만, 일본 작가 중에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도 실제로 있으니 전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어 난감했다는 이야기였다.



드라마에 뜬금없이 등장한 국어 시험 문제의 중의성 때문에 당시 50분 남짓하던 한 회차 드라마는 휙 끝나버리고 말았다. 간혹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시험 문제 사례는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해석했을까 생각해 보게 되니 이런 건 참 언제 봐도 재미있다.


가끔 자기만 알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자신의 의견만 맞다며 내세우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본다. 한 문장을 가지고도 이렇게 제각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말이다. 그러니 이 '희대의 바나나 사건'으로 나는, 내가 마땅히 그러하다고 여기는 것일지라도 무조건 나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글을 쓸 때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피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바나나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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