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도 없이 둥그런 몸통만 있는 놈이 서 있다가
작은 충격에도 기우뚱 쓰러져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늘 그랬듯 편케 눕혀 주었다.
시간이 흘러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어랍쇼?
또 서 있네?
때 아닌 납량특집일세.
너 걷고 싶뉘? 뛰고 싶뉘?
넌 다리가 없잖아. 진정하렴.
다시 비누를 잡아 고이 눕혀 주었다.
울랄라?
분명 눕혔는데
다시 들어가면 서 있고
또 눕혀주면 또 서 있고
비누랑 대화는 나누었지만
비누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걸 안다.
누가, 왜 그랬을까.
"화장실 비누, 누가 자꾸 세우는 거야?"
남편이 말한다. 자기가 그랬다고.
그냥 두면 축축한 물이 고여 쉬이 물러질 테니
세워 둔 거란다.
아. 그래서 네가 평소보다 좀 더 뽀송했구나.
세워 두니 물이 쪽 빠져 있구나.
보송보송한 비누.
아주 한참 전에 보았던 지하철역 화장실에 있던 비누가 생각난다.
고정이 되어 늘 보송보송했던
하지만 그 비누는 이상하게 만지기가 싫더라 큭.
그건 그렇고
우리 사는 이 세상도 참 비누 같다.
비누를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누야 어찌 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두면 만신창이가 될 텐데
누군가는 계속 바로잡고
또 바름을 위해 애쓰는 이가 있으니
그나마 이 정도의 세상이라도 유지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도
바름을 위해 애쓰는 이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