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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02. 2023

비누가 섰다

화장실 들어갈 때마다 비누가 서있다. 

손발도 없이 둥그런 몸통만 있는 놈이 서 있다가 

작은 충격에도 기우뚱 쓰러져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늘 그랬듯 편케 눕혀 주었다. 


시간이 흘러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어랍쇼?

또 서 있네? 

때 아닌 납량특집일세. 

너 걷고 싶뉘? 뛰고 싶뉘? 

넌 다리가 없잖아. 진정하렴. 

다시 비누를 잡아 고이 눕혀 주었다. 


울랄라? 

분명 눕혔는데 

다시 들어가면 서 있고 

또 눕혀주면 또 서 있고 


비누랑 대화는 나누었지만 

비누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걸 안다. 

누가, 왜 그랬을까.


"화장실 비누, 누가 자꾸 세우는 거야?"


남편이 말한다. 자기가 그랬다고. 


그냥 두면 축축한 물이 고여 쉬이 물러질 테니 

세워 둔 거란다. 


아. 그래서 네가 평소보다 좀 더 뽀송했구나. 

세워 두니 물이 쪽 빠져 있구나. 

보송보송한 비누. 


아주 한참 전에 보았던 지하철역 화장실에 있던 비누가 생각난다. 

고정이 되어 늘 보송보송했던 

하지만 그 비누는 이상하게 만지기가 싫더라 큭.


비누를 쓸수록 통통함이 사라지면 음... 더 만지기 싫은 이유는 왜지...? ㅋㅋㅋ



그건 그렇고

우리 사는 이 세상도 참 비누 같다. 

비누를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누야 어찌 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두면 만신창이가 될 텐데 

누군가는 계속 바로잡고 

또 바름을 위해 애쓰는 이가 있으니 

그나마 이 정도의 세상이라도 유지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도 

바름을 위해 애쓰는 이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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