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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28. 2023

눈이 없는 물고기

2주 전에 다녀온 제주여행은 비와 함께였다. 비를 맞설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실내 위주로만 다녀야 했다. 제주해녀박물관, 만장굴, 아쿠아 플래닛 등 비 오는 날에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을 미리 포스팅해준 블로거들 덕분에 다행히 여행 내내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삼성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가보긴 했지만, 제주의 수족관은 다르길 기대하며 방문한 아쿠아 플래닛 또한 꽤 성공적이었다. 펭귄과, 수달, 각종 물고기와 커다란 수족관에서 노니는 커다란 상어와 가오리와 정어리떼들을 보자니 나도 마치 그것들과 함께 물 안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상어와 푸른 바다거북의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할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조그만 알 안에 꿈틀대는 아기 상어의 모습도 꽤 신비로웠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는 물고기는 그것들이 아니다.  



유리메기(글라스캣피쉬)와 멕시코 장님물고기(블라인드케이브피쉬)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살이 너무 투명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선 가시인 뼈가 낱낱이 다 보이던 물고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눈이 없는 물고기였다. 뱃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무얼 먹었는지 단번에 알 것 같은 유리메기보다 난 눈이 없는 물고기에 더 눈이 갔다. 애초부터 그러니까 이 물고기는 지구상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눈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람 말을 할 줄 모르니 묻는다고 대답을 들을 수 없어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만, 어두운 동굴에서 살다 보니 눈을 뜨나 감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을 테고 점점 쓸모를 잃은 눈은 퇴화되었을 거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는 모양이다. 동물의 눈이란 내 주변을 보고 얻은 정보를 뇌로 보내 처리하는데 에너지를 쓰게 되는데 눈을 떠도 감아도 앞이 안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니 구태여 에너지를 쏟을 필요 없도록 용불용설에 따라 퇴화를 선택하는 쪽이 더욱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에너지를 비용으로 본다면 가성비(?) 측면으로도 그렇고.



아주 오래전 고래를 유추한 그림. (이미지 출처. 네이버 포토 뉴스)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고래가 육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큰 개처럼 네 발로 땅을 걷다가 지구환경의 변화로 물속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는 불필요한 다리가 퇴화되었을 것이다. 환경에 따라 그저 물 흐르듯 스스로 변해버린 눈이 없는 장님물고기 또한 육지에서 바다로 이동한 고래에 비하면 크게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기 싫다는 듯 눈을 감은 것만 같아 그 앞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2주나 지난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상어보다 새끼손가락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작디작은 물고기가 자꾸 떠오르는 건 신기한 마음이 남아 오래 기억이 나는 걸까, 오래도록 그 앞에서 머물러 있었기에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까.




모두가 정주행 하며 진한 감동을 느꼈다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도 시청률에 도움을 주려 합류하려다 이지은의 핏기 없는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본방사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명품드라마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다들 극찬인 걸까 뒤늦게 보았다가 "나의 아저씨"의 광팬이 되어버렸다. 본인의 삶도 힘들면서 기댈 곳 없는 이지안의 버팀목이 기꺼이 되어준 진짜 어른 이선균의 힘이 컸다. 


그를 극 중 인물과 동일시할 순 없겠지만, 맞춤옷을 입은 듯 딱 맞는 연기를 해주었기에 우린 거의 극 중 인물과 동일인으로 여길 만큼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데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사명감을 내세워 아직 내사 중이고 사건번호도 부여되지 않은 일에 소문만 보탰다. 언론만 문제인가.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새로운 가십거리가 나왔는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들여다보며 일을 자꾸 키워갔다. 손톱만 한 눈송이에 무성한 소문만 씌어 커다란 눈덩이로 만들어 갈 때 당사자가 겪을 고통은 그 누구도 돌보지 않고 구경꾼들은 호기심을 채우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기사를 찾아보며 혀를 끌끌 차기 바빴다. 자신은 여태껏 잘못 하나 없이 살아온 것처럼.


영화배우든, 가수든, 대중의 감정을 건드리는 아티스트는 그들 또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다. 대사 한 마디, 가사 한 구절에도 눈물을 떨구는. 숨기고 싶었을 어두운 표정을 어찌하지 못하고 드러냈을 때 그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겠지만 미디어에서 온통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자신의 모든 것이 파헤쳐져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이미 그는 모든 걸 놔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앞을 보지 않기로 결정한 물고기가 현명해 보인다.

모든 걸 보려고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좀 덜 보고, 입도 좀 닫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었다면


그는

숨쉬기 좀 수월하지 않았을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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