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어 하고 아홉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채우고 싶어 눈이 벌게지는 게 사람이라 했던가. 더럽게 책 욕심만 많아서 3주 전 도서관에서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빌려왔다. 나의 뇌는 하나요, 시간은 유한한데, 책을 많이 빌려온다 한들 뇌가 두 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무한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다행히 눈은 두 개나 있다는 사실에 위안 삼아야 하나. 하지만 눈은 둘이라 해도 젓가락처럼 함께 움직여야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건만. 책을 많이 빌려온다고 하여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도 아니요, 여태껏 읽어오던 속도를 내가 조절할 수 있어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욕심을 줄이지 못한 내가 참 한심할 뿐이다. 그나마 돈이라던가 작고 반짝이는 물건 따위에 욕심내지 않는 나를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가방 하나 책을 가득 담아 이고 지고 집에 와 부려 놓으면 펴보지도 않고 다시 돌려줄 그날의 내 얼굴이 화끈거릴까 봐서라도 좀 읽지 않을까, 읽지도 않을 거면서 왜 가져온 거니 스스로를 힐난할 것이 무서워서라도 읽겠지 싶어 무리를 했지만 역시 내겐 버거운 권수였다. 사실 도서관 책장에 무수히 꽂혀 있는 책들 앞에서 이것도 저것도 읽고 싶은 마음에 그 나중 일까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게 맞겠지만.
그렇게 어김없이 반납일은 돌아오고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다 못 읽은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8권을 빌렸는데 그중 2권만 성공이다. 지루함을 못 견디는 나는 이 책 찔끔 읽다 저 책 찔끔 읽다 이것저것 손을 대다 보니 완독을 못해서 그런 거라는 건 핑계다. 그동안 동영상을 즐겨 시청하며 킬킬거린 시간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닌 걸 보면. 원래 대여일이 2주이지만 대여하고 도서관을 나옴과 동시에 진즉 1주를 추가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란 사람, 읽는 게 참 느린 사람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머리가 따라오지 못해 이해가 더디고 뇌의 기민함은 앞선 거북이에게 형님 같이 가오 외칠 판이니 무거운 책을 이고 지고 주인 잘못 만난 내 몸뚱이는 이리 고생을 한다.
한데 내게 무리인 그 8권. 그것마저 빌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같은 3주의 시간이 주어졌대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겠지. 그래 2권이라도 완독 했음을 대견해하자. 당장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나아지는 내가 될 거라 믿으면서.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그 짜릿함이 좋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을 간략히 메모해 보았다.
*곤비하다 - '피곤하다'는 말만 줄기차게 써왔는데 '아무것도 할 기력이 없을 만큼 지쳐 몹시 고단하다'는 뜻으로 '피곤하다'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예) 곤비한 발걸음. 출처: 주방 표류기
*도무지 - 조선시대에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착착 발라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이다. 고통 없이 빨리 죽이는 가벼운 형에 속한다.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도무지'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괴발개발 - 괴(고양이)와 개가 함부로 찍어놓은 발자국 같다는 말. 괴발개발만 표준어로 인정했으나 이후 '개발새발(개의 발과 새의 발)'을 사람들이 많이 쓰고 두루 쓴다는 이유로 국립국어원에서 복수표준어로 인정함. 예) 글씨가 완전히 괴발개발(또는 개발새발)이구나. 출처: 우리말잡학사전
p.s 요 바로 앞 글(남편의 만행)이 브런치와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 그 글을 덮는 용도로 이 글을 썼다는 건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글을 쓸 동기를 미리 뿌려놓았던 걸까.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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