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옷을 입혀 한 김 쪄내면 보들하면서 녹진녹진해지는데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고 밀가루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살살 버무려 주면 살짝 매콤하면서 포근하고 녹진한 그 맛은 정말 끝내준다. 조금 번거로운 점이라면 찜통에 넣기 전에 꽈리고추의 꼭지를 죄다 따야 하고 각각의 고추 몸통은 이따 양념이 잘 배어들라고 삼지창을 닮은 포크로 한 번씩 콕콕 찍어줘야 하는 귀찮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몸이 조금 귀찮음을 견디면 잠시 후 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수년 전 어머님과 6개월 정도 함께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서 상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번뜩 떠오르는 꽈리고추 생각에 마침 냉장고에 장을 봐둔 꽈리고추를 꺼내 평소 내 방식대로 반찬을 만들었다. 며느리가 무슨 반찬을 만드나 흘깃 쳐다보시던 어머님이 고춧가루 양념을 버무리는 걸 보시고 뜨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아니, 누가 고추에 고춧가루 양념을 해서 먹는다니?
날씬한 몸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소유하신 어머님이 부드러움이라곤 1도 없이 일자로 뻗은 날카로운 일침에 나는 그만 큰 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가벼웠던 손동작은 느릿느릿 주저주저하며 마지막 단계인 통깨를 뿌리고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어머님은 냉장고를 열어 남은 꽈리고추를 마저 꺼내시며 이건 이렇게 만드는 거라고 알려주시려는 듯 어머님 방식의 꽈리고추 반찬을 만드셨다.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던 건가, 나름 충격을 받은 나는 만드시는 걸 보지 않고 내 할 일은 끝났다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어머님은 간장양념을 베이스로 하는 반찬을 만드셨다. 고추가 주재료면 고춧가루는 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손수 보여주시기 위한 건지 역시 고춧가루는 한 톨도 넣지 않고 완성하셨다. '그래도 우리 집은 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 주셨는데요!'하고 말괄량이 삐삐가 아주머니한테 큰 소리로 말하듯 나도 따라 외치고 싶었지만 왠지 정면도전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버릇없다고 친엄마를 욕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입을 열려다 꾹 참았다.
상에는 고춧가루 양념옷을 입은 꽈리고추와 간장양념 베이스로 만든 꽈리고추 반찬 두 가지 종류가 모두 올랐다. 수선을 피우지 않고 잠잠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치 음식 프로그램에서 둘 중 어떤 반찬이 과연 1등을 차지할까요! 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달까?
어느 게 더 맛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어느 반찬이 더 인기가 있을까 내심 신경이 쓰였다. 답은 시간만 조금 흐르면 자동으로 알게 된다. 밥과 함께 줄어드는 반찬의 양으로 어느 반찬이 제일 많이 줄어들었는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 접시에 담긴 두 종류의 꽈리고추 반찬 중 고춧가루 양념을 한 반찬의 접시 바닥이 제일 먼저 보였다.
며느리 승!
사실 승리고 뭐고 의미는 없었다. 어머님께서도 내가 만든 반찬을 한 번 맛보시더니 당신이 만드신 반찬을 두고 내가 만든 반찬에 자꾸만 젓가락질을 하셨으니 말이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뭐가 맞는지 또 뭐가 틀린 지를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본인이 자라온 환경에서 자주 보아온 것은 익숙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생소하다는 차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