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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01. 2024

고추와 고춧가루는 만나면 안 돼요?

그런 법이 어딨어

꽈리고추찜의 식감은 재미있다.

밀가루 옷을 입혀 한 김 쪄내면 보들하면서 녹진녹진해지는데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고 밀가루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살살 버무려 주면 살짝 매콤하면서 포근하고 녹진한 그 맛은 정말 끝내준다. 조금 번거로운 점이라면 찜통에 넣기 전에 꽈리고추의 꼭지를 죄다 따야 하고 각각의 고추 몸통은 이따 양념이 잘 배어들라고 삼지창을 닮은 포크로 한 번씩 콕콕 찍어줘야 하는 귀찮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몸이 조금 귀찮음을 견디면 잠시 후 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수년 전 어머님과 6개월 정도 함께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서 상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번뜩 떠오르는 꽈리고추 생각에 마침 냉장고에 장을 봐둔 꽈리고추를 꺼내 평소 내 방식대로 반찬을 만들었다. 며느리가 무슨 반찬을 만드나 흘깃 쳐다보시던 어머님이 고춧가루 양념을 버무리는 걸 보시고 뜨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아니, 누가 고추에 고춧가루 양념을 해서 먹는다니?


날씬한 몸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소유하신 어머님이 부드러움이라곤 1도 없이 일자로 뻗은 날카로운 일침에 나는 그만 큰 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가벼웠던 손동작은 느릿느릿 주저주저하며 마지막 단계인 통깨를 뿌리고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어머님은 냉장고를 열어 남은 꽈리고추를 마저 꺼내시며 이건 이렇게 만드는 거라고 알려주시려는 듯 어머님 방식의 꽈리고추 반찬을 만드셨다.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던 건가, 나름 충격을 받은 나는 만드시는 걸 보지 않고 내 할 일은 끝났다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어머님은 간장양념을 베이스로 하는 반찬을 만드셨다. 고추가 주재료면 고춧가루는 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손수 보여주시기 위한 건지 역시 고춧가루는 한 톨도 넣지 않고 완성하셨다. '그래도 우리 집은 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 주셨는데요!'하고 말괄량이 삐삐가 아주머니한테 큰 소리로 말하듯 나도 따라 외치고 싶었지만 왠지 정면도전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버릇없다고 친엄마를 욕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입을 열려다 꾹 참았다.


상에는 고춧가루 양념옷을 입은 꽈리고추와 간장양념 베이스로 만든 꽈리고추 반찬 두 가지 종류가 모두 올랐다. 수선을 피우지 않고 잠잠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치 음식 프로그램에서 둘 중 어떤 반찬이 과연 1등을 차지할까요! 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달까?

어느 게 더 맛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어느 반찬이 더 인기가 있을까 내심 신경이 쓰였다. 답은 시간만 조금 흐르면 자동으로 알게 된다. 밥과 함께 줄어드는 반찬의 양으로 어느 반찬이 제일 많이 줄어들었는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 접시에 담긴 두 종류의 꽈리고추 반찬 중 고춧가루 양념을 한 반찬의 접시 바닥이 제일 먼저 보였다.


며느리 승!

사실 승리고 뭐고 의미는 없었다. 어머님께서도 내가 만든 반찬을 한 번 맛보시더니 당신이 만드신 반찬을 두고 내가 만든 반찬에 자꾸만 젓가락질을 하셨으니 말이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뭐가 맞는지 또 뭐가 틀린 지를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본인이 자라온 환경에서 자주 보아온 것은 익숙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생소하다는 차이일 뿐.

그러니 다른 이의 방식이 낯설다 하여 처음부터 비난할 일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저녁 반찬은 꽈리고추찜 당첨이다!


이미지 출처. 블로그. 레즐리의 톡톡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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