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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05. 2024

아이도 울어야 밥을 준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끼며

쓰는 게 뭐가 어렵다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성토들을 하고 그러실까나 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깟게?)


글 뭐 어려울 게 있나?

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거창한 생각일랑 덮어두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대화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화를 하긴 하되 과묵한 상대는 귀만 열고 듣는 중이라 상상하고 나는 계속 이야기하듯 말을 만들어 내고 입 대신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신나게 하면 간단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머릿속에서 입으로 나가려는 말들은 많고 많은데 막상 꺼내려니 그에 걸맞은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한 단어로 계속 돌려 막기 해야 할 때면 내가 가진 어휘 주머니는 참으로 홀쭉하구나 깨달을 때도, 장황하게 쓰다 보니 주술 호응이 맞지 않아 읽을 때마다 턱턱 걸려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하고자 하는 말은 뻔한데 주장을 근거하는 뒷받침 문장이 너무 허약해 약골을 대하는 느낌이 들 때도 글은 참 쓰기 힘든 거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문제도 해결하자갈 길이 구만리인데 이것들을 차치하고도 또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으니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은 과연 써도 되는 건지 삭제를 하고 치워버려야 하는 건지 계속 고민에 빠지게 다.



어떤 문제점들이 더 있는 걸까.


1. 글을 열심히 쓰기만 하다가 후에 내 글을 봤더니 모순된 글이 있음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

나만의 경험과 생각으로 어쭙잖은 주장을 펼쳤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글과 정반대의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본다. 모순이다. 독자님 중에 어느 분이 내가 써 놓은 상반되는 두 개의 글을 들고 와 도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창이 방패를 뚫을 수 있다는 건가요, 방패가 모든 창을 다 막을 수 있다는 건가요? 하묻는다면 나는 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시시각각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글을 계속 써도 될까?


2. 글이 아닌 뒷담화를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됐을 때.

글이란 평소에 내가 직접 말로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풀어놓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하소연이라든지, 푸념, 남 탓 등등이 있는데 쓰다가 분노가 끓으면 상대를 원망하고 흉까지 보게 된다. 결국 험담이 되어버린다. 창작이라는 멋진 이름 뒤에 숨겨진 어두운 민낯을 자꾸 까발리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3. 혹시 내 글이 상대를 향한 저격 글이 되는 건 아닐까 주춤하게 될 때.

에세이를 주로 쓰지만 가끔은 나의 생각을 펴 알렸을 때 나로 인하여 세상이 개미 똥구멍만큼만 이라도 변화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싶어 가끔 주장을 쓰기도 한다. 이때 설득의 한 방법으로 내 의견만 내세우는 것보다는 상대 의견에 반박을 하면 좀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래서 반론을 제기하고 당신의 의견은 틀렸다며 정색하는 글을 쓰게 되는데 이것은 곧 상대를 저격하는 글이 되버린다. 상대는 맘 상하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는 마인드의 인프피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눈물에 자유롭지 못하다. 같이 눈물 나는...)


4. 애써 글을 쓰고 발행했는데 반박 댓글이 끝도 없이 달릴 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유명하고 완벽해 보이는 연예인들도 파헤쳐보면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올 만큼 위대한 업적을 세운 훌륭한 인물이어도 각자 콤플렉스로 인해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160cm 정도의 왜소한 체구에 내세울 것 없던 외모 콤플렉스를 가졌던 윈스턴 처칠이나 미국 최고의 토크쇼 여왕이라 불리지만 14세에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마약 중독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던 오프라 윈프리처럼.) 그러니 아마추어 작가(?)의 글은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 없을 것이 당연하다. 완벽하기 어렵다. 거기에 댓글창도 활짝 열려 있으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읽은 독자들에게서 네 의견은 틀렸다며 신랄한 반박과 함께 욕지거리와 다를 바 없는 비아냥거림의 댓글을 받으면 마음 약한 창작자들은 좌절 또 좌절을 하며 내가 왜 이런 글을 써가지고 사서 욕을 들어먹는가 한탄의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것뿐 일까.

나열하자면 더 있겠지만 어려움만을 논하다가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부정적인 예시를 한도 끝도 없이 펼쳐 놓는다 해도 글을 안 쓰고는 못 베기는 작가님들이 계시는 공간이 아닌가.


불행 중 다행인지 생각을 조금만 더 해보면 위에 언급한 어려움은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모순 따위는 나만의 철학을 굳게 세워 올곧게 나아간다면 흔들림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정신수양에 시간을 투자하면 흉보는 것도 줄일 수 있다. 의견을 개진하며 반박해야 하는 글에는 좀 더 정중한 표현으로 내 생각을 펼치면 될 일이고, 신중한 의견과 설득력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면 반박 댓글은 좀 더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꾸준함이 관건인 셈이다.


일전에 나는 어떤 일을 시작도 전에 할까 말까 고민이 되고 갈등이 생길 때는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실행해라!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진전도 없기 때문이다. 설사 실패를 한다 해도 실패를 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교훈이 있을 테니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백 배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을 하든 성공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는 안다.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무조건 성공을 이끌어내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조금씩(너무 조금씩이어서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나아가는 내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하지 않음보다 도전을 선택해야 하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겠다.




턱을 괴고 가만히 엎드려 나의 재능을 누군가는 꼭 알아봐 줄 거야, 날 못 알아본다면 손해 보는 거지 하고 기대만 하고 있지는 말자. 나를 알아봐 주길 원한다면 그들의 눈높이만큼 나를 끌어올려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출간도 마찬가지다.

출간을 원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글을 써 놓고 그 이후는 이렇다 할 글이 없거나 글을 쓰다 말다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무리 내가 출간을 원한다는 마음을 하루 24시간 갖고 있다 한들 그 마음을 누군가가 스스로 알아채 주기는 힘들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처럼 배가 고프다는 표현을 해야 즉,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표현을 해야 신인작가를 찾아 헤매는 그 누군가의 눈에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표현에만 그치지 않고 계속 꾸준히 글을 써 두어 제법 글이 쌓여있는 사람일수록  좀 더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으리란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노력한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니 조급함을 내려놓자. 조금씩 나아졌다는 사실은 써두었던 글 중 제일 처음에 썼던 글과 최근에 써 놓은 글의 격차로 스스로가 확연히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언젠가 뮤지컬 배우 김호영의 인터뷰를 접하고는 이 배우가 평소에 괜히 하이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마주할 때 나름의 자신감과 신뢰가 가득하여 눈빛마저 또렷하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총명함마저 느낄 수 있었던 말 때문이었다.


"아이도 울어야 밥을 준다.

사람도 물에 빠져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그 사람을 구한다는 거야.

'나 살려줘요'라고 얘기를 해야 그 사람을 구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자꾸 뭘 하고 싶다고 얘기해야 되고 나 여기 있다고 소리쳐야 날 안다."

         -김호영의 인터뷰 中



인터뷰를 듣다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존재감이 뚜렷해지면 배고프다고 울지 않아도 따박따박 시간 맞춰 밥을 대령해 줄 그날이 올지도.



https://youtube.com/shorts/SqzhgUBRuOs?si=e54S9HU9J7_2ZG-N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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