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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07. 2024

엄마~ 개같은 거 넣었어?

배가 불렀구먼

쌓아둔 김밥의 양이 후덜덜하다. 옆에서 한마디 하는 성동일. "이 사람아, 김밥 뭐 어디 납품받았는가?"


접시 한가득 오묘한 향을 담은 계란말이를 내오는 나를 보며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아이들.


"엄마~ 개같은 거 넣었어?

 아니 아니

 게 같은 거 넣었어?"


스스로도 어감이 이상했는지 다시 단어 사이를 잠시 띄우고 말하는 내 새끼들이다.

하지만 붙이나 띄우나 뉘앙스는 큰 차이가 없는 걸.



계란 값이 오지게 올랐다. 계란 한 판에 1만 원도 넘는 물가를 보고 놀라 기절할 판이다. 딸기는 몇 그램 담겨 있지도 않은 게 3만 원 가까이, 배는 6개 담긴 박스 하나에 7만 원 가까이 와... 이러다 아무것도 못 사고 못 먹어 피골이 상접하는 게 아닐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며칠 안 남은 구정엔 천장에 굴비 하나 매달아 놓고 한 번씩 쳐다보며 밥 먹어야 하나...


며칠 전 어머님께서 매우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다.

계란 세일을 만나 반가웠다시며 한 판에 6천 원 밖에 안 하니 싸도 너무 싸지 않냐며 어머님은 두 판도 아닌 세 판을 사셨다고 하셨다. 세.. 세... 세 판이요?

계란 세 판 그러니까 열 알 모자라는 일백 개의 알을 처리하기 위해 어머님은 그렇게도 많은 계란을 깨뜨리셨나 보다. 혼자 사시니까 아무리 아무리 드셔도 줄어들지는 않고 결국은 상해서 버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계란말이를 만들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계란을 왕창 깨뜨려(한 30알쯤?) 파, 당근, 양파, 버섯 등 야채를 다지고 골고루 다 함께 쉐킷쉐킷 계란물을 만드셨다. 그렇게만 부치셨다면 정말 맛나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필 계란물을 만드시다가 홍게가 생각나신 거다. 

작년 가을쯤 또 왕창 사두신 홍게- 그렇다. 어머님은 손이 정말 크시다. 몸에 좋은 서리태는 조금씩 사는 것보다 대량으로 사면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하시면서 포대로 사서 쟁여두시는 분이다. 한 포대는 약 10킬로쯤 된다- 를 일일이 살을 모두 발라 냉동에 얼려두신 걸 계란말이를 더 맛있게 만드시고자 함께 넣어 또 쉐킷쉐킷 섞어주셨다.


부쳐둔 계란말이를 먹으면 계란 맛이 아니라 홍게 맛이 난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 하였사온데 왜 홍시맛이 나냐고 하시면... 하고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계란 맛이 나는 계란말이를 먹고 싶다...)

뭐 처음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얼마나 정성 가득한 요리인가 말이다. 남들은 게가 없어서 못 먹는데 게가 많아 처치곤란이라 계란말이에도 게를 팍팍 넣는 집구석이니 얼마나 감사해야 될 일이냐.


그렇지만...

무엇이든 적당히가 딱 좋은 법.


점점 물린다. 말이를 하나 집어 먹으면 고소한 끝맛이 남아야 할 타이밍에 게의 비릿한 맛이 맴돌아버린다. 아... 돌아버린다. 비린 맛이 계란의 담백한 맛을 모조리 덮어버렸다. 담요로 옴팡지게 덮은 것처럼.


처음에는 계란말이에 홍게라니 독특하고 신선한 데다 영양가도 만점이겠는 걸!

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주야장천 게 맛이 나는 계란말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범한 계란말이인데 단순히 양만 많다면 길거리식 토스트를 해서라도 빵 사이에 비집고 넣어 소비를 할 수 있을 텐데 단순한 계란말이가 아니잖은가. 토스트에 넣었다가 토스트의 기억도 비릿한 게와 함께 남을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 


그렇다면 어머님은 왜 비릿한 맛을 모르시는 걸까? 어머님은 계란말이를 해서 전부 몽땅 하나도 남김없이 다 우리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너희들 더 먹으라고...

그러니 맛을 모르신다. 절대 물리거나 질리거나 하실 수가 없다.


보내준 음식 잘 먹고 있냐며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다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음식 주면 갖다 버린다는데 너는 그러면 안 돼~~"


하고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메아리쳐 울렸다.


"어머! 그럼요~ 어머니~

 (남편이) 얼마나 잘 먹고 있는데요~"


남편은 정말 다행히도 계란말이를 잘 먹는다. 

여보~ 열심히 먹어. 이거 다 먹으려면 밥 없이 계란말이만 먹어도 7박 8일 먹어야겠는 걸?

힘내 파이팅~~~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 

라고 노래를 불렀던 진정한 설날이 이제 곧 다가온다. 

새해에는 작은 바람이 있는데

홍게를 뺀 계란말이를 먹는 것이 소원이다. 

네네, 제가 배가 불렀지요? 헤헤





브런치스토리 운영진님께 드리는 말씀 한마디)

운영진님~ 이 계란말이 글은 Daum메인에는 올리지 말아 주세요.  

어머님은 Naver가 아닌 Daum을 주력으로 보시거든요. 그러다 저 걸리면 어머님은 역정을 내시고 저는 상처를 받아요. 네? 다음 메인에 올릴 생각도 없었다고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ㅋㅋ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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