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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20. 2024

무섭지 않은 귀신이 있던가 - "수상한 한의원"

"수상한 한의원"을 읽고 몇 자 남겨본다. 

종이책을 예약하고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윌라에서 오디오북으로 내내 귀로 듣고 완독을 해버렸으니 읽은 게 아니라 들었다는 말이 맞으려나. 


한의원이 수상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 호기심에 소개글을 잠깐 훑었더니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임을 알게 됐다. 소설에 귀신이라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귀신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귀신이라 함은 다리 하나쯤 없거나 또는 바닥을 딛지 않고 스르륵 이동하거나, 풀어헤친 머리 사이로 텅 비어 까맣게 변해버린 동공, 그리고 뻘건 피가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 있는 게 기본이니 이런 모든 비주얼을 시청각 자료에 담아 두 눈으로 구경을 해야지 글로 귀신을 표현하여 감히 스산함을 느낄 수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아... 지금 나도 귀신을 묘사하고 있구나. 


서양의 고스트와 동양의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의 차이점은 한(恨)의 유무라고 했다. 

이를테면 7080 세대나 그 윗 세대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전설의 고향은 늘 같은 패턴의 구조를 갖는데도 오랜 기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사또 앞에 흰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으스스한 여자귀신이 나타나 흑흑흑 우는 소리에 사또가 기겁을 한다. 처음엔 기절 직전까지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어느새 익숙해진 귀신에게 적응되어 담소를 나눈 후, 귀신이 저 세상에 쉬이 못 가는 이유인 한을 풀어주어 귀신도 행복하고 마을도 평화가 찾아왔다는 뭐 그런 한풀이 이야기가 연속하여 나왔었다. 그러니 귀신의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이번 회차는 어떤 한(恨) 때문에 구천을 떠도는 건가 하는 궁금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반면에 서양의 경우를 보면 한 따위는 없다. 예를 들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시리즈물까지 나온 "데스티네이션"을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무서운 일의 연속은 한은 물론이고 앞 뒤 인과 관계 따위는 없다. 그저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의 연속인 사건만 나열될 뿐이다. (엘리베이터 문에 끼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죽게 된 사람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ㅠ)


그러니 누가 봐도 한국인인 배명은 작가가 집필한 "수상한 한의원"은 궁금할 수밖에. 

도대체 어떤 한을 가졌길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사람들 곁을 헤매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초장부터 돈에 환장한 한의사가 나온다. 뇌물을 주고 부원장 자리를 꿰차려다 실패하고 깡시골에 한의원을 소박하게 시작하게 되는데 이 한의사가 다 나은 줄 알았던 병에 도지고 만다. 일명 귀신을 보는 병. 한의원 맞은편에 자리한 한약방의 고사장도 귀신을 보는데, 그 한약방은 낮에는 사람 손님을 밤에는 귀신 손님을 받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고인의 물건을 태우는 것. 물건을 태운다는 건 물건의 죽음을 뜻하고 죽은 사람에게 닿게 된 죽은 물건은 그 세계에서 용이하게 쓰인다.  


더 많은 줄거리를 쓰면 스포가 되므로 책을 직접 읽으실 때 김샐까 우려되어 줄거리는 더 이상 풀지 않겠다. 




나의 필명 루시아는 세례명이 아니다. 

아니 원래는 세례명이 맞고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 중 세례명으로 '루시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세례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보다는 아티스트 '심규선'의 또 다른 이름 '루시아'를 그저 따라한 거라 보는 것이 더 맞다.  


종교가 없으면 꽤 자유롭다. 주말마다 기도하러 가지 않아도 되어 시간이 자유롭고, 엉뚱하고 발칙한 공상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자유롭다. 또 헌금을 얼마나 해야 하나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니 홀가분하다. 딱 한 가지, 죽음 이후 저 너머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사라진다면.


늘 나는 다음 생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귀한 사람이든 천한 사람이든 어쨌든 모든 사람은 자신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가는 것인데 생이 다하여 죽음이 임박한다면 나는 도깨비처럼 무로 돌아가는 건지 지구상에 먼지 한 톨로 변해버려 생각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가 매우 궁금하면서 무서웠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 내가 없어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 '수상한 한의원'을 읽으면서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됐다. 죽음이 그다지 무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귀신을 모두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매개체 역할을 하는 수정과 승범을 통해 귀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들도 살아있는 사람과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달까. 


주로 잠들기 전에 잔잔하게 윌라 오디오북을 틀어 놓고 잠을 청하는데 그다지 무섭지 않았던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책이라 신기한 마음이었다. 지금 윌라에서 매우 인기 있는 오디오북인 "수상한 한의원"을 여러분에게도 권하는 바이다. 눈이 침침하여 책을 읽기가 힘이 든다면 책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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