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킬로미터가 될까 싶은 거리지만 불볕더위인 지금, 그것도 가장 더운 시각인 오후 한 두시에 아이들더러 센터에 걸어가라고 하는 건 너무 무리다. 햇빛이 좀 힘을 잃는 7시쯤 하원할 때는 걸어서 집에 오지만 뙤약볕 시간인 등원은 내가 차로 센터에 데려다준다.
센터에 거의 도착할 무렵 도로에서 절대 마주치기 싫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씽.크.홀.
이미지 출처. 포토뉴스. 당진에서 발생한 씽크홀
다행히 위 사진처럼 씽크홀 현장이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아니었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둥근 맨홀 주변을 따라 꽤 움푹 파여 들어간 지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약간의 균열도 영향을 주기 마련인데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차가 계속 그 위를 지난다면 점점 더 심하게 파일 것이고 결국엔 맨홀과 함께 둥그렇게 구멍이 뚫리고 말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잘하는 편이다. 별 일 없이 누워 자면서도 혹시 천장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놀이동산에 놀러 가서도 혹시 놀이기구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나면 어쩌지, 전쟁이란 건 쉽사리 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혹시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쩌지 온갖 걱정을 혼자 짊어지며 산다.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티베트의 속담을 듣고 매우 공감한 나는 조금씩 걱정을 버리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차도가 약간 패인 것을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거겠지 하고 떨쳐버렸다.
하지만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씽크홀에 대한 뉴스와 사고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냥 넘겨버리려고 해도 마음 한편이 영 찝찝했다. 그렇다고 막상 신고를 하자니 당장 씽크홀 사고가 벌어진 것도 아니라서 119는 너무 과하고, 도로 관련 부서로 전화하려 해도 길치인 나는 이 길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하기도 했다. 혹시 길을 잃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인근 전봇대 일련번호를 불러주면 구조대가 나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운전 중이니 전봇대 일련번호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고할 전화번호도 마땅치 않고 정확한 위치 설명도 곤란하다는 생각에 그냥 또 하루를 넘겼는데 갑자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떠올랐다. 이상 조짐이 약간이라도 보였을 때 누군가 신고를 했다면 대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길치이면서 파워내향형인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신고하기로.
자, 그럼 어디로 신고를 해야 하나. 초록창에 검색을 하던 중 다산콜센터가 보였다. 서울 사람들은 참 좋겠다. 경기도민인 나도 외우는 120번 서울 다산콜센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엇이든 해결해 준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민이 아닌 나는 어디다 해야 하나 휴대폰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중 지역번호 + 120을 누르면 해당지역의 다산콜센터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호라.
경기도 지역번호인 031과 120을 누르고 잘 설명하지 못하는 길치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다. 친절한 상담원은 해당구청 안전건설과로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했고 혹시나 정확한 위치가 파악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마치 큰 일을 해낸 것 같아 흐뭇해졌다.
괜찮겠지 싶어 그냥 넘기고,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고 그냥 방치했는데 기어이 사고로 이어져 인명피해가 난 것을 마치 나의 신고로 사고를 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게 길이 약간 패인 것뿐일 수도 있지만 후에 혹시 벌어질 사고를 뒤늦게 수습하는 것보다는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이 싸게 먹히니 내 신고가 쓸데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 그곳을 지날 때 현장을 수습하느라 <공사중 -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표지판을 본다면 나는 왠지 더욱 뿌듯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