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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Sep 21. 2024

치매인 줄 알고 눈물이 찔끔


없다.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일반냉장고에도 없고, 김치냉장고에도 없다.


먹다 남은 피자를 통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넣었던 것까지는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기억할 것도 없다. 내용물을 모두 담았다면 그대로 들고 냉동고에 넣었을 테니까. 그건 머리로 생각을 해야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만일 뇌가 잠들었대도 몸이 기억하는 일이라 그저 몸 가는 대로 내 몸에 맡겼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낭패다. 생각을 잠시 멈춘 이 몸뚱이가 잠시 잠깐 좀비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냉동고에 스윽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는 결론이니 아무리 떠올리려 애써도 그 순간은 까맣게 변해버린 필름이었다.


엊그제 나는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먹성 좋은 우리 가족을 위해 피자를 샀는데 한 판으로는 택도 안 될 것 같아 두 판을 포장해 왔다. 그래도 두 판은 너무 많았는지 다섯 조각이나 남아버렸다. 남게 되면 보통은 위생 지퍼백에 넣어 냉동해 두었다가 출출할 때 한 조각씩 꺼내 데워 먹으면 그만한 간식이 없는데 다섯 조각은 많아서 사각 통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토요일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공식적으로 마음 편히 늦잠을 자보는 날이기에 9시쯤 부스스 눈을 떠 아침으로 피자 줘야지 하고 냉동고 문을 열었는데 없다 없어.


냉동고를 열어 구석구석을 뒤져도 없고, 혹시 깜빡하고 냉장에 넣어둔 건가 냉장고를 뒤져도 없다. 설마 통에 가지런히 담고서 냉동에 넣는 걸 잊은 건가? 그걸 말도 안 되는 상온인 주방 어디쯤에 두었다고? 그럴 일은 없는데 두 번 세 번 일반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속속들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넣을 법한 통은 모두 꺼내 뚜껑을 열어보아도 이게 나랑 숨바꼭질을 하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런 식이면 냉장고를 거꾸로 들어 털어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도대체 그게 어디로 간 것이냐 말이다.

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던 도둑이 나 몰래 들어와 피자가 담긴 통만 들고나갔을 리는 없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침메뉴로 정해둔 피자를 못 먹게 된 아쉬움보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없어 피자통을 못 찾는 내가 너무 무서웠다. 혹시... 치매가 걸렸나... 어린 사람이 걸린다는 초로기 치매? 아... 맞다. 나 어리지 않지...


화장실에 가서 뒤를 안 닦고 나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찝찝할 수가 없다. 혹시 남편이 아침에 먹고 출근한 건가? 남편이 먹었다면 먹은 흔적이 분명히 남기 마련인데 주방이며 식탁이며 피자의 흔적은 1도 없다. 내 선에서 너무 처리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남은 건 사실 우리끼리 먹어치우려고 했던지라 피자 이야기를 남편에게 꺼내기는 싫었지만 방법이 없다.


"여보...

피자가 사라졌어..."


"냉동에 분명히 넣어뒀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떠. ㅠ.ㅠ"


한껏 쓸쓸하고 처량한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나도 모르게 귀여움 한 스푼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


"피자, 위에 있던데?"


"어디 어디?"


"유리 선반 위에"


"김치냉장고 냉동?"


"응"


"그래?"


초고속 대화가 끝나고 스프링처럼 솟구쳐 일어난 나는 허겁지겁 냉동 문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 몇 차례나 열어 확인한 곳인데 또 열어 확인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냉동고가 무슨 터널처럼 깊고 깊어 손이 안 닿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전히 단번에 보이지 않아 점점 또 불안해졌다. 하지만 남편은 분명 보았다 하지 않았나. 내 너를 꼭 찾아내고 말리라 다짐하며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았다. 그랬는데 손에 잡히는 사각통. 차가운 유리다... 찾았다... 마침내.




사건은 이랬다.

락앤락 통의 뚜껑 홈에 장착되어 있는 고무가 찢기고 오염돼 고무를 잡아 뺐더니 뚜껑이 헐거워지고 제대로 잠기지 않길래 뚜껑은 버려버리고 유리통만 쓰자 했는데 냉동에 넣어야 하니 비닐 랩봉투에 통을 넣고 집게로 집어 두고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단순히 제 뚜껑이 제대로 덮인 통만 찾아 헤맨 것이었다. 뚜껑이 없는 채였고 게다가 투명한 강화유리였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


남편의 힌트로 겨우 찾은 피자통을 붙들고는 난데없이 찔끔 눈물이 났다.

쥐도 새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치매가 온 줄 알았던 것이다.


"히잉... 피자 애먼 데 두고 영영 못 찾는 줄... 엄마 치매 온 줄 알았어... ㅠ.ㅠ"


아이들에게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더니


"엄마, 그럴 수 있어. 치매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하고 의젓한 목소리로 딸이 말했다.


사지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까지 정신줄 놓지 않게 뇌 건강도 열심히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치매는 다른 병과 달리 치매 환자보다 가족이 더 힘든 질환이니까.

그래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예쁜 아기들이랑 오래오래 행복하지.




*치매 예방 팁*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고 이 호르몬은 알츠하이머나 치매에 걸리게 하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을 생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스트레스에 매몰돼 살지 말고 바로바로 해소해야 한다.  

또한 바쁜 현대인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멀티태스킹도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원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하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을 자주 주기적으로 하게 되면 뇌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단기 기억을 떨어뜨리게 된다.



문제의 그 피자를 담은 뚜껑이 없는 강화유리통










... 근데 난 스테인리스 통에 담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왜 유리통에 담겨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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