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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트램, 살고 싶은 마을, 포즈

#14. 포르투의 트램, 포즈해변

by 라헤

불편함을 타고 온 낭만, 포르투에서 트램 타고 포즈해변 가기.


포르투 히베이라 광장에서 포즈 해변까지는 생각보다 꽤 먼 거리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더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트램을 타고 싶어, 시간 맞춰 트램에 올라탔다.


(트램은 히베이라광장 맥도널드 앞에서 탄다. 포즈해변을 가려면 여기서 타서 그냥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오래된 나무 좌석, 덜컹거리는 소리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기분뿐이었다. 좌석 좁고 불편했고, 차 안은 꽤 덥고 습했으나, 에어컨은 없고 창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도로는 울퉁불퉁해서 몸이 쉴 틈 없이 흔들렸고, 속도도 자전거보다 조금 빠른 정도였다. 분명 불편한데.. 이상하게도, 이 트램은 관광객으로 늘 인산인해다.


문득 침착맨이 유튜브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산돈가스가 맛없는 이유는,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예전 맛 그대로—그러니까 지금의 기준에선 맛없게—만든다는 말이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다. 처음 들었을 땐 웃겼지만, 이번 트램 경험과 묘하게 겹쳐졌다.


포르투의 클래식 트램도 어쩌면 그렇다.

현대식 전동차를 도입하면 훨씬 쾌적하고 빠를 텐데, 굳이 오래된 차체를 유지하며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 도시의 ‘오래됨’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불편함마저도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버리는 도시. 관광객은 그 흔들림과 낡음에서 낭만을 느끼고, 사진을 찍고, “이게 진짜 포르투다”라고 말한다.


사실 리스본도 비슷하다. 이미 최신식 트램이 일부 구간을 달리고 있음에도, 관광객은 여전히 28번 클래식 트램을 타려고 긴 줄을 선다. 똑같이 덜컹거리고, 좁고, 낡았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확신이 든다.


사람들은 가장 불편한 교통수단을 일부러 선택한다.

그것이 이 도시에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기에.

추억은 불편함 위에 남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고풍스러운 트램의 안과 밖, 엄청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그게 낭만이지.

트램에서 내리면 포르투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풍경은 완전히 바뀐다. 도시의 분주함이 사라지고, 눈앞엔 푸른 자연이 스며든다. 포즈 해변은 도우루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트램에서 내리면 도우루 강의 끝자락이 펼쳐지고, 그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대서양의 수평선과 마주하게 된다.


여름이면 이곳은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지만, 우리가 찾은 12월의 해변은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 덕에 더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잠시 시간 밖으로 벗어난 것처럼.

키가 큰 나무와 푸른 잔디가 바다와 함께 펼쳐진다. 나무에는 신기한 앵무새들이 산다.

같은 바다지만 대서양(Atlantic Ocean)은 괜히 특별하다.

어렸을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중 하나는 보아의 〈아틀란틱 소녀〉였다. 물론 노랫속의 '아틀란틱'이 진짜 대서양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지만, 그 노래를 통해 처음으로 '대서양'이라는 바다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이름은 내 마음속 동경의 바다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동해든 대서양이든 결국 같은 바다일 텐데, 우리는 포즈 해변의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몇 시간이고 바다만 바라보았다. 특별한 대화도, 음악도 없이. 그런데도 이상하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 그 푸른 수평선이 모든 것을 채워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몇시간을 바라본 바다, 사진에는 그때 그 감성이 담기지 않는다. 아쉽다.

포르투는 모든 게 좋았지만, 하나 아쉬웠던 건 음식이었다.
나는 맛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맛집’이라 불리는 곳마다 기대 이하였다. 비싼 레스토랑도, 골목 속 소박한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기대를 접고 있었을 정도다. 그런데 포즈에서, 가이드가 추천해 준 한 식당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이름은 "BRASÃO FOZ". 이곳은 말 그대로 포르투에서 만난 최고의 맛집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훌륭하고 음식, 음료, 직원들의 서비스, 가격, 분위기, 음악 모두가 완벽했다.


R. de Gondarém 487, 4150-377 Porto, 포르투갈

https://maps.app.goo.gl/mczErPnzMb5DYLMR6


포르투갈 식당은 메인 요리 전에 ‘쿠베르(Couvert)’라는 전채를 내놓는다.

무료 서비스가 아니라 따로 요금을 내야 하기에, 원하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그런데 이 날따라 쿠베르가 유독 맛있어 보여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순간 느꼈다. “여긴 진짜다.”

고소한 빵과 짭짤한 올리브의 조화가 정말 기가 막혔다. 메인을 먹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식전빵과 같이 준 저린 올리브도 맛있다. 여기서 맛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뒤이어 나온 양파튀김에도 감탄했다.

처음엔 그 거대한 비주얼에 감탄했고, 두 번째는 한 입 먹자마자 그 맛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나는 원래 양파튀김을 좋아해서, 메뉴에 보이면 거의 빠짐없이 주문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양파튀김 중 가장 맛있었던 건, 라스베이거스의 고든 램지 버거에서 먹었던 그것이었다. 이번 양파튀김은 그 기억을 위협할 만큼 훌륭했다.(아직까지는 고든 램지 버거의 양파튀김이 내게는 최고다.)

이게 뭔가 싶겠지만 양파튀김이다. 양파의 단맛이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운다.

프란세지냐는 과대평가된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칼로리 높고 짜디 짠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깊은 맛이 있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었다. 꾸덕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훌륭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바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포즈,

포르투에 산다면 여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반나절만에 이 도시에 반했다.

메인으로 먹은 프란세지냐와 포르투갈식 스테이크, 디저트로 먹은 초콜렛 아이스크림.

바로 숙소에 가려는데 아기용품집 발견! 바로 들어갔다.

포르투갈이 아기옷으로 유명하다. 좋은 원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산 예정인 부부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카톡이 불이 났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TV를 틀어보니 대부분의 뉴스 채널에서 특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계엄령을 특보로 보고 있다니, 이거 꿈인가?

계엄령이라니? 귀국 못하는 거 아니야?(개꿀)

와이프는 숙소에서 쉬게 하고, 나는 문득 시간이 아까워져 다시 도시를 산책했다.

새벽 수정궁 공원의 안개, 수정공 공원의 명물인 공작새,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는 중.

아, 포르투에 맛집 있었다. 에그타르트(NATA)

숙소 가는 길에 다시 들린 CASTRO시 만난 CASTRO, 먼길(?) 떠나니 배를 먼저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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