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포르투의 전통시장, 볼량시장
여행이란 늘 낭만적이진 않다.
포르투의 골목골목을 몇 시간째 헤매며 걷다 보니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임신한 아내의 얼굴에 핀 설렘이 피곤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풍기는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우릴 이끌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생각보다 훨씬 세련되고 활기찬 공간, 바로 포르투의 전통시장 ‘볼량시장’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인테리어에,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부터 갓 튀긴 크로켓, 향긋한 와인과 치즈까지. 시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제되어 있었고, 마트라고 하기엔 놀라울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둘러앉거나, 친구, 연인과 계단에 앉아, 혹은 통로 한 켠에서 서서 음식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모르는 이들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습, 냄새와 소리, 표정들까지 모든 게 인상 깊었다. 갑자기 힘이 난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자리에 앉았다. 그 짧은 휴식 속에서 포르투의 매력은 훅, 마음 깊이 들어왔다.
그곳에서 문득 생각했다.
이게 바로 시장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볼량시장은 불량시장이 아니다.
포르투의 볼량시장(Mercado do Bolhão)은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이곳은 단순한 시장을 넘어 포르투를 찾는 관광객들이 무조건 한번쯤은 찾는 관광 명소이다.
리스본의 도둑시장과 비교하면 여기 볼량 시장이 아주 쾌적하다. 19세기 중반부터 운영되어 온 역사깊은 공간으로 한때 시설이 낡고 위생 문제도 심각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4년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단순한 시장을 넘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공사 전 상인들 사이에서는 "장사를 중단하면 생계는 어떻게 하나", "전통적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시 당국은 임시 영업 공간을 마련하고 기존 상인들이 공사 후에도 복귀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또한 건물 외관과 구조의 전통성을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그 결과 현재의 관광 명소가 완성되었다.
반면 한국의 전통시장들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는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정작 기대만큼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 1,610곳이던 전국 전통시장은 2020년 기준 1,401곳으로 줄었고, 점포 수도 22만5천여 개에서 20만7천여 개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시장당 일평균 매출은 5,787만 원에서 5,732만 원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으며, 방문객 수도 2019년 대비 2022년 약 741명이 줄어들어 하루 평균 4,672명 수준에 머물렀다.
전통시장에 투입되는 예산은 늘어나는데 시장 수는 줄고 매출과 유동인구도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것만으로는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통시장이 외면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간은 바뀌었지만 문화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설이 깨끗하고 편리해졌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굳이 전통시장을 찾아갈 이유가 없다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끊기게 된다. 또 시장 자체에 지역 고유의 이야기나 체험할 만한 요소도 부족하다면,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현금만 받거나 가격표를 붙이지 않는 가게, 불친절한 응대 등 과거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장에서는 고객이 다시 찾아오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시장을 살려야 할까?
현재 전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전통시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인구는 줄고 소비 패턴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권이 겹치는 시장은 통폐합하고, 핵심 거점 시장에 선택적으로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조건 다 살리겠다는 목표보다, 반드시 살릴 시장을 골라 제대로 살리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시장 상인들의 변화와 참여가 핵심이다.
단순히 건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이용하는 방식과 문화를 함께 바꾸어야 한다.
포르투의 볼량시장처럼 지역의 정체성과 현대적 편의가 어우러진 시장,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비로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전통시장에 필요한 것은 예산만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과 실행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상인과 지역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의 전환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