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성장기록-1

사춘기와 섭식장애.

by 겨리

중 2 큰 아이.

아침은 빵 한 조각,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 한 숟가락.

학원 끝나고 밤 9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 한 끼를 먹는다.

칼로리 계산하며 당근, 오이, 양배추, 고추등

야채로 먼저 배를 채우고 나서야 숟가락을 든다.

밥 먹을 때 혼자 두지 말라며

매번 식탁 앞에서 벌을 세운다.

중2병은 눈길도 주지 말고 무관심 하라던데

나의 큰 아이는 "관심병"이다.


초4 작은아이.

평소에 간식, 밥 뭐든 잘 먹는 아이인데

며칠째 속이 안 좋 소화가 안된다며

먹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언니가 섭식장애로 잘 먹지 않고 음식 칼로리에 대한 강박증이 작은 아이에게도 전이가 된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라며

우선 소화제라도 받기 위해 소아과를 찾는다.


성장

한번 클 때마다

못 먹고 잘 먹고를 반복하고 있는 둘째.

생존수영이 있었던 일주일이

힘에 부쳤는

언니의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달되어 그런 건 아닌지

미리 걱정부터 앞선다.


사춘기 되면서

큰 아이를 찾아온 섭식장애.

그렇게 먹는 걸 좋아라 하고

먹을 때 행복해하던 아이.

6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매일 유튜브 홈트를 강박적으로

시작했다.

공부하는 시간으로 잠이 부족 함에도

살이 붙을까 봐 불안해서

운동을 거르지 못했다.

말로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또 미친 듯이 강박적으로 운동하던 그 모습에

화를 내가며 타이르기도 하다

서로 눈물을 쏟기도 했다.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파.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던 엄마딸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엄마, 친구들이랑 다니면 마른 애들한테는 예쁘다, 날씬하다 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뚱뚱해서 주목을 못 받는 것 같아 살을 빼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운동도

먹는 것도 배고프고 힘들지만 꾹 참고했어요.

10킬로 정도 살이 빠지니까 친구들도 어른들도

저를 보면 날씬해졌네, 예쁘다, 넌 말랐으니까 좋겠다라며 얘기하고 관심도 받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 또 살이 찔까 봐 그때처럼 뚱뚱해지면 사람들이 저한테 무관심해지고 떠나갈까 봐 그게 무서워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결국엔 관심과 사랑이었나...

홀로 아이를 키우며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게 관심과 사랑도 충분히 주었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는데

한쪽의 사랑이 결핍돼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나를 탓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 때마다 체중계로 올라갔다. 몇 그람이라도 늘어나 있으면 종일 극단적으로 굶었다.

매일 정해놓은 양만큼만 먹고 칼로리에 예민해졌다.

먹는 간식며,

시켜 먹는 배달음식, 나가서 먹는 외식메뉴마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과하다 싶으면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끊고(마라탕. 떡볶이)

안 먹었다.(라면. 짬뽕. 짜장. 탕수육)

같이 외식을 하러 가서도

고개를 숙여 음식을 거부하고 안 먹는다거나

가게 밖을 나가서 안 들어온다 거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절식하고 외면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일 년 사이 10킬로 넘게

중1학년을 지나가고 있었고

생리 한번 시작을 끝으로

생리도 끊겨 버렸다.

이차성징이 다 멈춘 듯 보였다.

가슴도 나오지 않고

뼈만남아 일반옷은 입지도 못하는 데다

머리털은 다 빠져 메마른 빗자루처럼

뻣뻣해져 있다.

바짝 마른 몸이 되어있는 큰 아이.

그러다 보니

집이란 장소를 제외한

다른 장소에 사초대를 간다거나

나가서 외식을 한다거나 하는

즐거움이 아닌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다왔다.

그럴 바에는 맛있든 없든 큰아이와 모두를 위해 집에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하는 편을 택했다.


직장 생활하며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인지라

자본주의 산물인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매끼를

따듯한 밥과 국, 반찬을 달리 해준다는

직장생활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평소 요리에 재주가 있거나 관심이 많거나

즐거움을 느끼거나 보람되게 다가왔다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아이문제도 버거웠고

요리 흉내만 내던 내가

큰 아이의 섭식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칼로리 적은

진정한 건강밥상을 차려내야 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큰 부담이었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자연스레 멀리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약속 있는 날 이면

재미있게 놀고먹고 수다 떨 시간을 보내는데

놀기만 하고 먹지 않고 들어 온다.

그게 가능한 건가?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사람들이 자기 먹는 것만 보는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다고 그런 거란다.


큰아이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혼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무서운 말도 해가며 고쳐보려고 다 잡아 봤지만

아이를 붙잡고 더 이상 혼자는 자신이 없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갈까 봐 걱정이 되어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청소년전문정신과 예약은 쉽지 않았다.

최소 3개월-6개월은 기다려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아이가 겪어야 할 심리적 고통이 너무 클 것 같아

심리상담센터라도 가보자 하니 가보겠다고 했다.

거부하지 않고 함께 가보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이었는지.


심리상담센터를 처음 찾은 날.

큰아이 또래 많은 여자아이들이

같은 문제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마다 예약이 빼곡하다.

'요즘 사춘기 섭식장애가 이렇게나 많았구나'

겨우 한 타임 취소되어서

예약날보다 조금 더 빨리 아이와 갈 수 있었다.


심리상담사와 큰 아이가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고

상담사가 내 아이와 대화하면서

파악한 문제와 원인에 대해 메모한 것을 토대로

엄마인 나와 더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7살 때 이혼하며

한부모 가정에서 큰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알고 느끼며 자라온

성장배경에서

나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아이의 성향은 어떠했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금쪽이의 원점부터 파고들었다.

늘 괜찮다고 하던 아이,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던 아이는데

마음속으로는

괜찮은 게 아니라 그런 척했던 것이다.

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먹는 문제로 튀어나온 거란다.

어릴 때 억눌렀던 부정적인 심리가

사춘기가 되면서

눈에 보이는 자기 몸과 관련

자기 학대성향으로

발현된 것 같다고 한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자아존중감, 효능감을 끌어올려주어

난 충분히 괜찮은 존재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일 번으로 두지 않고

생각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는데

이혼가정이라는,

왜 결핍될 수밖에 없었는지

기능상 문제는 제쳐두고

한쪽의 부재라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의 심리적 문제를

결함으로만 보고 원인을 찾는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미술그림치료와 심리치료 병행을 권했고

매주일회 세 달 정도 약속을 잡고 치료해 보자고 했다.

일하는 엄마인 데다가 매주 온다는 건 사치였고

비용 또한 부담스러웠다.

양육비도 못 받고 혼자 벌어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본주의와의 보이지 않는

절대 지면 안 되는 잔인한 싸움 해가고 있었다.


아이도 중학생인 데다

식이장애만 아니면

너무나 잘하는 게 많고 미래에 큰 꿈과 목표를 가진

공부욕심도 많은 아이.

학교와 학원 뺄 시간이 없어 난감해하던 표정.

올 수 있는 날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앞으로의

상담치료날짜는 잠시 보류해 두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 나 엄마가 조금만 도와주면

상담치료 안 받고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상담하면서 내 얘기를 다 털어놓고 나니까

마음이 엄청 가벼워지고 기분도 좋아졌어.

이 식이문제를 엄마가 너무 심각하게 말고

제가 안 먹으려 할 때는 지켜봐 주고

먹으려 할 때는 챙겨주고 하면서 지나가면

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가 많이 미안해.

너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엄마 식데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문제를 더 키운 것 같아서.

미술치료도 심리치료도 다 해주고 싶은데

경제적, 시간적으로 엄마가 많이 부담스러워.

이런 엄마상황까지 다 알아서

네가 먼저

치료상담 더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엄마가 함께하면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도록 만든 것 같아 그게 더 마음 아파.

항상 엄마를 먼저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저 밑에 담아 두기만

그 스트레스가 섭식장애로 튀어나온 거 같아"


"아니야 엄마

난 엄마가 제일 좋아 많이 사랑해요

그런 치료 안 받아도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도 많이 노력할게.

우리같이 잘해보자 내 딸~사랑해 고마워"


버스 타러 가는 길.

큰 아이와 나의 감정이 뒤섞여

긴 시간을 헤매다 이제야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 듯한 일체감을

그 짧은 이동거리 동안의 대화로 느꼈다.


'큰 아이야,

나는 네가

엄마를 위해

그 어린 나이부터 감정을 누르고 있었던 걸

몰랐어.

엄마도

생물학적 여자인 나를 잠시 넣어두고

너의 든든한 지지자로

네가 사춘기성장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그 길을 함께할게.

사랑하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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