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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끌림 23화

유정과 지한이야기-8

둘만의 비밀

by 겨리

술자리 내내 겹쳐지던 서로의 눈빛은 우연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손위로 포개어진 지한의 손은 더 이상 우연일 수 없었다.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간을 보낸 술자리 만났어야 할 인연이었을까, 그냥 스쳐 지나갔어야 할 우연이었을까.

가로등빛이 더 밝게 빛나게 해주는 짙은 어둠의 밤. 둘은 사케집을 나와 천천히 골목길을 걷는다.

마치 한길로만 나있는 길 위, 단 둘만 존재하는듯한

좁은 골목길을 조용히, 나란히 느린 걸음으로 서로의 보폭을 맞춘다.


"지한 씨, 집이 근처라고 했지?"

어색한 듯 침묵을 깨려 유정이 말을 꺼낸다.

"네, 저기 골목만 돌면 바로 보이는 오피스텔에서 살아요. 팀장님은 댁이 멀다고 들었는데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야.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어. 곧 대리 부르면 되니까 괜찮아."

"제가 못 보내 드리겠어요. 너무 늦은 밤에 팀장님 혼자 위험하기도 하고 또 제가 술친구로서 의리는 지켜야죠. 저 때문에 귀가가 더 늦어지신 건데."

유정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혼자 대리기사를 불러 기다리고 타고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터라 지한이 바래다준다는 것을 더는 거절하지 않는다.

함께 주차장까지 걸으며 나누던 대화를 이어간다.


"지한 씨는 나이도 젊고 한창일 나이라 친구들 많이 만날 때 아니야? 혼술 하기에는 말이야."

"지방에 있다가 서울 온 거라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없어서 집 가까운 곳에서 혼자 먹고 가끔 한잔 하는 정도가 저는 편하더라고요."

"그렇구나. 가끔 친구들 만나면 뭐 하고?"

"고둥학교친구 네 명 모임이 있어요. 일 년에 한두 번 1박 2일 여행도 가고 바다도 보러 가고 여자 친구얘기도 들어주고. 주로 제가 고민상담을 해주는 편이에요.

저만 싱글이거든요."

"의외인걸? 싱글인데 커플 고민상담을 해준다고?

지한 씨가 경험이 많아서 친구들이 연애상담에 신뢰를 갖나 보구나."

"그런 건 또 아닌듯해요.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닌데

상대방에게 거절도 당해보고 귀찮아서 썸만타다 끝내 적도 있고 그런 여러 심리를 좀 파고들어서

책으로 공부하고 아는 척 조언이라고 해주는 거죠."

"그럼 지금은 연애를 쉬는 중이고?"

"아뇨. 전 연애가 안 되는, 못하는, 음...아니,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독신, 비혼주의예요."

"그런 말 들어봤어?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 말 하는 거야,라고. 너무 옛사람 말인가?"

혼자 살짝 입가에 미소 지으며,

"나도 지한 씨 나이쯤엔 비혼주의였어.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어느 날 시간 지나 돌아보니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남들처럼 살고 있더라고."

지한은 그런 유정의 비혼주의가 의외였다는 듯,

"팀장님은 지금 봐도 비혼주의, 독신주의가 될 수 없는 타고난 외모, 우아한 성격을 가진 매력 넘치는 분이신데 말도 안 되게 비혼주의였다뇨~"

그 순간, 가로등 아래 그녀가 빛이 되어 지한의 눈에 들어온다.

사케의 알코올로 기분 좋아진 반달 눈웃음을 담아 달아오른 핑크빛 양볼로 더 생기 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유정.

"지한 씨는 기분 좋으라 하는 말이겠지만 오랜만에 여자로서의 칭찬 나쁘지 않은데? 아직도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여자로 보일 수 있구나~"


가까이 걷고 있던 서로의 팔이 닿자,

유정이 지한의 팔짱을 살며시 끼고 그녀가 기대어 편히 걸을 수 있도록 한쪽 어깨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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