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커피

by 봄날

대학교 3학년 때가 되자 전공 공부가 부담이 되었다. 한 두 시간의 공부로는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다. 지금은 학교에 커다란 도서관이 세워져서 도서관 열람실 자리가 넉넉하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도서관이 작아서, 시험 때가 되면 좌석표를 받지 못해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면, 주변의 소음을 견뎌야 한다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연구실에 학부 연구생으로 들어가 책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 건물 안에는, 강의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들의 연구실이 복도 양옆에 나란히 있었다. 학부 연구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과대학 물리학과 건물을 둘러보니 연구실이 많았다. 그전에는 연구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연구실 문을 노크해 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해도,

“학부 연구생이 될 수 있는가요?”

라는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핵이론 연구실 앞에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다음 순간, 어떻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후, 나는 핵이론실 학부 연구생이 되어 연구실 한편에 있는 책상을 사용하게 되었고, 나를 따라 동기 친구가 같이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연구실에는 석사과정 선배님 두 분과 박사과정 선배님 두 분이 계셨다. 연구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연구실 선배님들과 같이 한 공간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연구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님과 미팅을 했다. 그 미팅에서는 일주일 동안 공부한 내용에 대해 발표를 해야 했다. 학부 연구생이기는 했으나 연구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다, 미팅 시간이면 선배님들이 말하는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해서 눈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학생이 귀하기 때문에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학생이 발표를 잘 하지 못하면, 윗선배님들이 그 학생에게 뼈 아픈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그 학생이 나의 선배이면, 난 또 그 선배에게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꾸지람을 들었다.

책상 한자리가 주는 무게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난 늘 주눅이 들어 있었고 대가 센 선배님들 밑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님들이 옆에서 어떤 말을 해도 못들은 척 자리에 꾸역꾸역 앉아 있는 것 뿐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되자 갑자기 선배님들이 너그러워지셨다. 선배님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선배님이 씌익하고 나를 보고 웃으며,

“냉커피 만들어줄까?”

라고 하셨다. 나는 거절도 못하고 개미만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했다.

그때에는 커피 전문점이나 일회용 커피 믹스가 없었다. 그래서 커피를 누군가 만들어준다고 하면,

“난 1대 2대 1이야.”

라고 말하곤 했다. 인스턴트 커피와 커피 프리마, 설탕의 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비율이 사람마다 달랐다. 냉거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 물을 주전자에 적게 넣고 인스턴크 커피, 커피 프리마, 설탕을 비율에 맞춰 넣은 후, 물에 잘 녹을 때까지 숟가락으로 열심히 저어야 했다. 선배님은 커피가 들어 있는 주전자에 얼음을 동동 띄워 물의 차게 식혀 컵에 따라 주셨다.

“내가 비율을 잘 알지!”

라며 그 무서운 선배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나는 그 선배임이 만들어준 커피를 황송스럽게 받은 후,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냉커피를 홀짝거렸다. 맛있었다. 그 선배님은 졸업 후, 개방직 공무원을 하시다 마흔 살의 나이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냉커피를 만들어주시던 모습이 가끔 떠올라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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