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대부분 여자선생님이셨는데 1학년 때 잠시, 그리고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남자선생님이셨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면 한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일어난다.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나는 성적이 그리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반에서 공부를 잘 한다고 알려진 친구와 같이 있는 나를 본 선생님은 친구에게 왜 성적이 안좋은 아이와 어울리냐고 하셨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나의 성적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많이 울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따로 나를 불러서눈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차별. 내가 선생님에게서 받은 첫번째 인상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만 예뻐하신다는 것이었다.
늘 굳은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시비를 걸면 당장에라도 멱살을 붙잡고 싸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무서웠다. 아이들과는 재잘거리며 떠들다가도 선생님이 보이면 어디라도 숨어야 할 것 같았다. 수업 시간이면 숨을 죽이고 선생님 얼굴만 보았다. 그런 성생님 앞에서는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목에 때가 끼었을까봐 세수를 열심히 했다.
반에는 선생님이 이뻐라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늘 그 아이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고 어렵기만 했던 선생님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그 아이를 불렀다. 화가 난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그 아이의 뺨을 때렸다. 아이는 울부짖으며 선생님. 잘못했어요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선생님은 화를 참지 않고 발로 그 아이의 몸을 걷어찼다. 그렇게 수업 시간 내내 맞은 아이는 그 이후로는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간데없이 있는듯 없는듯 조용하게 있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성적표를 고쳐쓰고 어머니께 성적표 도장을 받으려고 했다고.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성적을 종이에 적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그 성적표를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도장을 받아와야 했다.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선생님이 옆에 오기라도 하면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그분은나에게 공부에 대한 학습동기를 주신 첫번째 선생님이었다. 성적이 나쁘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 나는 그 이후로 집에서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부의 즐거움을 알아서가 아니라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한글자씩 글자를 공책에 적으며 나를 향해 비열한 미소를 던지던 아이들과 그 뒤에 서 있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렇게 나의 공부가 시직되었다.
겨울 방학이 되자 어머니는 나에게 선생님의 집에서 과외 공부를 하게 하셨다. 겨울 방학 때 아이들이 선생님으로부터 그룹과외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아이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에게 그 그룹에 들어오라고 해서 나는 뭣도 모르고 과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집은 2층 양옥집 차고 안쪽의 작은 방이었다. 그 시절에는 차고 안에 작은 방을 만들어 세를 놓았다. 친구들 중에도 그렇게 살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그때는 선생님 집이 차고 안에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과외 공부를 하러 가면 선생님은 1부터 100까지 곱하기를 하게 했고 곱하기를 다 한 아이들은 방 한가운데에서 오목을 두었다. 내 기억에 선생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문제를 내고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를 푸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졌고 문제를 풀려고만 하면 불안해서 손에 땀이 났다. 나도 오목을 두고 싶었지만 문제를 다 풀기도 전에 시간이 다 되어서 오목을 두지 못하고 집에 가야 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 되던 하루, 선생님의 친구분이 선생님집에 오셨다. 문제를 푸는 나를 보던 친구분은 나를 옆에 앉히고 문제를 한줄씩 읽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문제를 푸는 방법이 눈에 보였고 마침내 나는 문제를 읽고 풀 수 있었다.
그 겨울 방학이 지나 5학년이 된 나는 방정식 문제를 자신있게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공부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기초가 되어 나름 수학을 잘 하는 학생이 될 수 있었다.
5학년 초여름 비가 믾이 오는 날, 나는 우산없이 집에 가야 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으로 가는 길을 돌아 선생님집으로 갔다. 차고 안으로 들어가 선생님의 방 앞에 섰다. 방의 문이 조금 열려있었고 그 안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모여 술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큰 소리로 뭐라고 선생님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더이상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듯 차고를 나와 빗속을 뛰어 집으로 갔다. 얼마 후, 선생님은 결혼을 하셨고 학교에 계시다가 다음해에 전근을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