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덜덜덜덜’
읭? 이게 무슨 소리지?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던 어느 휴일 오후.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소리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내 방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라는 것.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어느 하나 특이한 점이 없었다. 평소와 똑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세탁기 방향으로 돌리기 전까지는.
낮잠을 자기 전에 빨래를 돌렸다. 세탁이 끝나고 나오는 완료 소리를 알람으로 활용할 겸.
그런데 세탁기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덜덜 거리던 기존 소리에 ‘쿵쿵쿵’ 무언가를 치는 듯한 소리까지 얹어져 대환장 합창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공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 공연은 계속 진행되면 안 될 것 같다고. 아니 절대 안 된다고. 확신이 들었다.
잽싸게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엉덩이를 들어 무릎 반동으로 튀어 올라 세탁기에게 향했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눌러 공연 커튼을 내렸다.
처음에는 ‘세탁기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어서 짜증 났다가, 휴일이라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가, ‘어쩔 수 없지.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달관의 태도로 이어졌다.
‘잠깐만, 이유? 진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세탁기 상태가 정상이 아니면 아무런 예고 없이 그대로 망가져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소리를 낸 이유가 있을까?’
혹시,
알아차려달라는 거 아니었을까? 나 지금 어디가 불편하다고. 안 좋은 거 같다고. 힘이 든다고. 이 상태로는 계속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그래. 미안하다 형이. 너 생각을 못했구나. 나는 그래도 일주일에 이틀은 쉬는데, 생각해 보니 너는 하루도 안 쉬고 매일매일 일했구나. 나한테 하루도 못 쉬게 하면서 일을 시켰으면 상사 욕을 미친 듯이 했을 거 같은데… 혹시 너도?
어쩌면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적 기억에,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단연 할머니의 “어이구. 어이구.”였다.
어린 꼬마였던 나는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앉을 때랑 일어설 때 왜 그렇게 소리를 내요?”
할머니는 답하셨다. “으응. 이 소리를 내면 힘이 난단다. 할머니만의 주문이야.”
이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니 들리는 곳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 유독 많이.
오늘은 그곳에 방문해보려고 한다. 가서 안마도 좀 해드리고 야구, 드라마 등의 주제로 대화도 하고 용돈도 좀 드릴까 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우리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