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쓸모없다고 말할 순 없다.
“아아~ 고장 난 테레비, 세탁기, 냉장고오오 삽니다아아~~~”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창 밖에서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꽤나 오랜만에 듣는 것만 같다. 요즘은 폐가전들을 어디에 버리나 몰라.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고물상이 몇 개 있었다. 고물상 안을 자세히 본 건 아니지만, 지나갈 때마다 흘끗 보면 꽤나 많은 고물들이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쌓인 고물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다 저렇게 되는 건가. 나는 쓸모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려지기 싫다.’
가전제품은 10년이면 바꿔야 한다고 하던데, 우리 집에도 그 주기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20년 정도 함께 지낸 ‘Gold Star’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는 친구들을 보내주던 날이었다.
그 친구들은 분명 ‘쓸모없지 않았다.’ 제 기능을 오롯이 다하고 있었다. 망가진 곳도 없었다. 다만 이전보다 소리가 좀 크게 날 뿐.
어린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왜 망가지지도 않았는데 바꿔? 왜 버리는 거야? 불쌍해!” 아빠는 답했다. “갈렙이 친구들을 망가질 때까지 쓰는 게 더 괴롭히는 거일 수도 있어. 지금도 힘들어서 저렇게 소리를 내고 있는 거거든.”
아빠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이 태어났으니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도 좋은 거야. 이제 새로운 친구들이랑 얼른 친해지자!”
그렇다. 언젠가는 우리의 순서는 끝난다. 지나간다. 생업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만드는 장소에서, 자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인 가장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순서가 지나갔다고 쓸모없는 건 아니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온 그 시간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흔적들이 지워지는 건 아니니까.
정말 오랜만에 고물상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슬쩍 안을 봤다. 예전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많은 고물들이 있었다. 쌓인 고물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