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렙 Feb 02. 2024

“우리 애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작다고 기죽지 말아요. ‘우리’



얼마 전 누나가 세탁기를 새로 샀다. 가장 최신형으로. 용량도 가장 큰 걸로. 자그마치 25kg나 됐다. 게다가 미니 세탁기가 결합된 모델(LG 트윈워시라고 하는)로 그 세탁기 용량만 4kg이었다. 다 합하면 총용량이 자그마치 29kg이나 되는 것이다. 집에 있는 우리 애는 9kg인데…




누나가 이전 세탁기를 오래 썼고 함께 사는 가족도 있으니까 큰 걸로 잘 샀다고 덕담을 건넸다. 누나도 고맙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누나가 그다음에 덧붙인 말이었다.



“너도 세탁기 바꿔. 언제까지 그 쪼그만 걸로 할 거야? 그렇게 작으면 빨래도 제대로 안되고 빨래에서 냄새나.”



사실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누나의 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일단 지금 세탁기를 너무나도 잘 쓰고 있고, 나를 위해서 누나가 더 좋은 걸로 바꿔줄 것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멀쩡한 내 세탁기를 ‘별로’인 것처럼 말하는 게 별로였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이 내 새끼한테 뭐라 하면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용량이 적으면 좀 어때서! 연식이 좀 예전 꺼면 어때서! 기능이 좀 적으면 어때서! 흥칫뿡이다. 그런 거 상관없이 여전히 나를 위해서 빨래만 잘해주고 있는데 뭐. 지금도 아무 문제도 없는데 뭐.’

생각할수록 올라오는 짜증에 혼잣말로 따졌다. 아! 혹시나 같이 사는 세탁기가 들을까 봐 마음속으로.






우리도 마찬가지다. 키가 크지 않다고. 어리지 않다고.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까. 화려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멋져 보이지 않을지라도, 웅장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 말이 좀 길었나. 억울해서 그러는 건 정말 아니다. 진짜다. 정말로.



기죽지 말자. 트렌디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각자 존재만으로 소중하니까.



오늘은 이 중요한 메시지를 소중한 친구에게도 전달해 줄 겸 전화를 해봐야겠다.  


“야, 너네 집 세탁기 몇 kg이냐?”           

이전 15화 언젠간 다 떠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