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용서
빨래 돌릴 때 세제를 많이 넣는 편이다. 가끔은 ‘과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느 정도냐하면 세제 때문에 생긴 거품을 세탁기가 감당하지 못하고 토해낼 때가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랄까.
(브런치북 2화 ‘세탁기는 왜 거품을 뱉어내야만 했나’ 참고)
세제를 양껏 부어 넣고 빨래를 돌리면, 세탁기 안은 하얀 거품이 가득 들어찬다. 빈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덕분에 우리 집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눈을 볼 수 있다. 세탁기 안에 가득 들어차있는. 가득 쌓여있는.
엘사가 잔뜩 화가 나서 만들어버린 겨울 왕국과 같이, 새하얀 거품으로 뒤덮인 세탁기 안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 거품들, 다 헹궈질까?’
아무리 세탁을 깨끗하게 하더라도 거품을 잘 헹궈내지 않으면 그 옷을 입을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애쓴다고 해도 우리에게 묻어 있는 원망과 상처들을 헹궈내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지 않을까.
나에게 거품처럼 묻어 있는 원망과 상처들을 헹궈내고 싶다. 살아오며 이런저런 이유로 묻어서 지금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는.
‘용서’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사용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선한 의도라고 할 수도 없다. 상대방을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니까.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동료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 때문에,
관계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과한 기대감 때문에
우리는 상처받고 때로는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거품처럼 붙어 있다.
내게도 ‘헹굼’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내 안에 새겨진 상처들, 쌓인 원망들을 모두 씻어낼 수 있게.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