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장복 Jan 10. 2022

싸움 | 어릴 적 이야기 5

앞뒤를 가릴 겨를이 없었다


싸움_oil on linen_53×72.7cm_2022


앞뒤를 가릴 겨를이 없었다. 책가방을 팽개치고 둥근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길이 1m 남짓에 지름 5cm의 옷걸이였다.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송가네 아줌마의 육중한 대퇴부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빡.. 휘둥그레 눈을 부아리며 홱 돌아보는 얼굴이 사나웠지만 찡그린 표정에 큰 아픔이 엿보였다.


 아줌마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엄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줌마의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왔다. 튀었다.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안마당을 지나서 대문 옆 뒷간에 들어가 두 손으로 문고리를 꽉 붙들었다. 아줌마는 꽥꽥 고함지르며 이리저리 길길이 뛰었다. 한 시간 남짓 버텼을까. 묵은똥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어질어질 머리가 띵했다. 아줌마는 분에 못 이긴 채 가게 안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살그머니 나와 크게 숨을 한번 들이킨 후 창고에서 쇠로 만든 연탄집게를 무기 삼아 집어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기다란 세탁소 간판을 등지고 납작 엎드렸다. 빈 나무상자와 자투리 각목과 비닐 등등의 폐자재를 엄폐물 삼아 앞에 쌓아놓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줌마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철계단 오르는 소리가 쿵쿵 났다. 발소리에 맞추어 내 심장도 쿵쿵 뛰었다. 와중에 옥상 초입에 죽 늘어서 있는 장독들.. 딱지와 구슬, 팽이 따위를 쟁여놓은 내 보물함을 어쩌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줌마의 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돼지 멱따는 찢어지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너 이 새끼 거기서 안 나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뒷목을 잡아챌 것 같았다. 자세를 고쳐 쪼그려 앉았다. 몸을 낮추고 눈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쳐들었다. 연탄집게는 조금 더 쳐들었다. 숨을 죽였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사실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어라......? 잠시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쿵쾅거리며 도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입으로는 연신 욕지거리를 해댔으나 분명 후퇴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가게를 나서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얼마 후 엄마가 올라왔다. 나를 보자마자 붙들고 엉엉 울었다. 그냥 우두커니 서있었다. 고개를 젖혀 오르는 눈물을 담아두려고 애썼다.


이튿날 엄마의 종용에 못 이겨 송 아줌마에게 사과했다. 고개만 까딱, 숙였다. 그랬더니 사과하는 꼬락서니 좀 보라며 또 난리를 피울 기세였다. 땅바닥을 발로 문대며 뭐라 말해야 하나 망설였고 아줌마는 못 참고 휑하니 가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송 기자네는 이사 갔다. 2022.1.10 륮

작가의 이전글 한겨울밤 | 어릴 적 이야기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