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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Jan 29. 2022

10월 23일 오전 11시 52분

주엽공원에서

10월 23일 오전 11시 52분_oil on linen_45.5x37.9cm_2021



그림 사건이 머릿속에 그려지면 작업실로 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그러다가도 얼마 못가 가라앉은 납덩이처럼 축 처진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롤러코스터다.


일어나 밥 먹고 그리고 다시 밥 먹고 그리고 자고 일어나 밥 먹고.. 일 년 삼백육십오일의 대부분이 이렇다. 더욱이 팬데믹이라 단조롭기 이를 데 없다.


벽과 마주하여 궁리한다. ''저 진노랑의 획을 나이프로 걷어내어 꾸덕해지면 화이트를 듬뿍, 옆구리 붓으로 듬성듬성 놓자. 그러면 빛이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몇 번 더 중얼거리면 머릿속 그림이 완성된다.


가슴이 다시 뛴다. 구겨져 있던 몸을 솟구치듯 일으켜 부산을 떤다. 또랑한 눈으로 날뛰다가 졸린 눈으로 빠져나온다. 붓을 닦는다. 잔다. 다시 일어나 밥 먹고 그리고 그리고..


앞 공원 위로 해가 뜨고 봄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한 해가 열린다. 그래도 같은 가을은 없다. 그림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그런 가을을 만날 수 있는데 문턱에서 또 어물쩡거린다. 괴롭다. 이따금 햇볕을 쬐는 수밖에.. 달리 숙명이 아니다.


10월 23일 오전 11시 52분. 가을이었다. 더없이 화려했다. 햇볕은 맑고 나뭇잎은 알록달록했다. 흔들리는 빛 속에 잠겨 감각을 타고 들어오는 가을을 한껏 들이마셨다. 2022.1.27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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