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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리한 호구 Mar 17. 2022

목욕물 같은 사람

저는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뜨끈한 목욕탕에 앉아 있으면 피로가 풀리지 않나요? 어릴 때는 목욕탕이 그저 습하고 답답해서 가기 싫었는데 저도 나이가 먹은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제 주변에는 목욕탕 좋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수도원 살 때도 형제들과 가끔가곤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못 가본지 꽤 되었습니다. 집에 욕조도 없고 해서 그냥 목욕탕은 추억속의 장소로 남겨두고 그리워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지난달에 어느 추운 겨울 날, 동네를 걷다가 갑자기 시야 안에 목욕탕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7천원이라는 가격.. 추운 날씨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백신도 3차까지 접종을 했으니 용기를 내어서 목욕탕으로 들어갔죠. 예상대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들 목욕탕은 기피하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목욕탕을 거의 전세낸채 샤워를 하고 탕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에....입가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정말로 너무 좋았거든요.  


집에서 하는 샤워와는 차원을 달리 합니다.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에 잠겨 있으니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멋모르고 한발 담궜다가 지옥불의 뜨거움에 온힘을 다해 탈출했던 열탕 조차도 너무 좋았습니다. 추운곳에서 잔뜩 수축해 있던 온 몸이 후라이팬 위의 버터마냥 녹아내렸으니까요. 그리고 같이 있는 건식 사우나까지.. 간만에 제대로 즐기고 나왔습니다.  


샤워와 목욕의 차이는 뭘까요? 우리가 샤워를 하다보면요..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이 제 몸을 데워주긴 합니다. 하지만 몸의 한 부분만 따뜻하게 해주죠. 물줄기에 우리의 등을 대고 있으면 배가 추워집니다. 그래서 배를 대면 또 등이 차갑죠. 하지만 욕조안의 따뜻한 물은 다릅니다. 그냥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감싸주니까요. 제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기 위해서는 갖은 노력을 해야 하는 샤워와는 다르게 목욕물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나를 있는 그대로 감싸안아 줍니다.  


그러니 우리 목욕물 같은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샤워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한 부분만을 바라보고 감싸줍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다른 모습을 보이면 실망하고 떠나가죠. 이 사람은 다양한 모습을, 다양한 부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채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상대를 판단하고는 그것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그 부분을 거부합니다. 이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여야 하니 함께 있을 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마치 내 몸을 따뜻하기 위해서 내가 온갖 노력을 해야 하는 샤워기처럼요. 


하지만 목욕물 같은 사람은 다를겁니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빠짐없이 받아들여 주니까요. 그 사람이 살이 쪘건 말랐건 목욕물은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해주죠. 목욕물 같은 사람은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모습까지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모르던 모습을 보이더라도 거부감을 가지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죠. 이런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은 편안합니다. 내가 다리를 뻗고 앉던 쭈그리고 앉던 그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니까요. 내가 따로 좋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영리한 호구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내가 인정하는 상대방의 모습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부분을 보았을 때 실망하기 보다는 그냥 그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도 그냥 인정하는 모습 말이죠. 사실 나의 모습도 제대로 알기 힘든데 다른 사람의 모습을 모두 알려고 하는 것은 큰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주고 판단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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