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수도원에서 10년 살다가 나왔습니다. 의사를 하다가 전혀 다른 길로 빠져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의사로 복귀를 했죠. 사람들은 제게 물어봅니다. 그 10년이 아깝지 않냐고요. 그러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답합니다. '1초도 아깝지 않다'고 말이죠.
저와 같이 의대를 다니고 인턴을 함께 했던 친구들, 형들, 동생들은 이미 개업한 원장님이 되거나 종합병원의 과장님, 일본으로 넘어가 개업을 한 원장님이 되어 다들 자리를 잡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기만 하죠. 10년을 수도원에 가지 않고 의사를 계속 했으면 저도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을 텐데 그 시간이 아깝다는 사람들의 걱정은 어찌보면 타당합니다. '의사'인 저에게는 그만큼 커리어 면에서 늦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인 저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저는 수도원 들어가기 전에는 굉장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도 잘 했고, 성격도 착하다고 주변에서는 칭찬을 했지만, 저는 그 칭찬들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죠. 저는 제가 미웠습니다. 사람들이 착하다고 이야기 하는건 그저 내가 소심해서 싫은 소리를 못해서 일 뿐이었고, 공부는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학원을 다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존감이 낮다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평가를 끊임없이 신경써야 하니까요. 가끔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도 저는 평소와 다른 눈빛이라고 생각하며 기어코 저 사람이 나에게 화난 일을 찾아내려 애쓰고 그 이유를 만들어 냈거든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사과하면 상대방은 화난적 없다며 당황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온통 다른 사람의 눈만 신경쓰고 살았죠. 저 혼자서 제 인생을 결정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수도원에서 사는 10년간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수도원에서도 어느 시간 까지는 똑같았죠. 오히려 24시간 신경써야 하는 눈들이 늘었으니 저 자신을 더 갈아 넣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착한 척을 내려 놓아야 하는 시간들이 생겼고, 그렇게 부족한 저 자신을 탓하는 단계에 이르렀죠. 심할 때는 제가 미쳤나 싶었습니다. 하루 중에도 감정이 몇 번씩이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거든요. 그러다가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감정도 안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 거 같은데..?'라는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도 부족한 점들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좋습니다.
내 인생 전체를 의미있게 만드는 방법.. 그건 과거의 내 시간들이 의미를 가진다는 이야기가 되죠. 하지만 우리는 가끔 과거의 나의 환경이 달랐다면,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하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를 가지곤 합니다. 살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을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인생 전체가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쉽고, 어찌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바로 현재의 나를 좋아하면 됩니다.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모든 시간, 순간들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 준 이정표들이니까요. 만약 그 중에 하나라도 다른 순간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그 때는 너무도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들, 생각하기도 싫고 돌아가기 싫은 순간들 조차도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내 모습'은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수도원에서 지냈던 10년이라는 시간이 1초도 아깝지 않다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좋거든요. 수도원에서 항상 기쁘고 즐거운 순간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끔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 시간들이 저를 성장시켰고,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 그 괴로운 순간들 까지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죠. 물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절대 싫다고 할껍니다. 그런 순간들은 모르니까 견뎠지 알고는 못 견딜 것 같거든요.. 하지만 다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제게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는 결과만 좋으면 됐지..라는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결과만 중시하고 그 과정을 무시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꽤 괜찮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과가 좋다'는 걸 잘 설정해야 하겠지만요. 제가 말하는 인생에서 결과가 좋다는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건 돈이 많거나 부유하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 껍니다. 그 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인간적인 '만족감'과 '행복'의 문제이죠.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 사실들은 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바뀔 수 있죠. 내 인생의 모든 부분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내 인생 전체는 의미있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죠. 그렇게 과거의 상처들까지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과거의 상처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나의 자존감을 채워줄 도구로 이용해 먹을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럴 수록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작은 일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 갈 수 있겠죠.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을 사랑하면서 과거 모든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다들 화이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