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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게임 3화

애정세포발달기

by 유쾌한 철옥쌤


알바를 하며 하루가, 또 하루가 흘렀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갔지만 김지성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가… 기다린 건가?’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이상한 서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부산 아가씨에게 잠시 장난을 치고 떠난 남자, 그 정도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던 날, 집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응, 나야.”

그토록 기다렸던,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저는 이제 연락 안 오는 줄 알았는데예… 잊었는갑다, 그래 생각했는데예.”

내 말에 그는 단호히 답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니? 다만 내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스무 살인데도 마치 오십 대 아저씨처럼 살아야 해서 여유롭게 전화를 걸 수가 없었어. 하지만 매 순간 아우라가 넘쳐나던 네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힘을 냈다. 너무 보고 싶었어. 내일 대구로 출장을 가는데, 잠시 짬을 내어 전화를 한 거야. 넌 어때? 잘 지냈어? 남자애들이 너한테 사랑 고백하고 그러진 않아? 꼭 말해줘. 결혼할 남자 있다고.”

그의 목소리 속 달콤한 말들은 세상의 모든 사랑 노랫말이 다 모인 듯했다. 가수 윤수일의 노래 제목, ‘황홀한 고백’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사람들은 유아기를 ‘발달의 민감기, 결정적 시기’라 말한다. 하지만 내 개인의 애정세포 발달에 있어 결정적 시기는 바로 이때였다. 만약 그 시절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내 계정에는 아마 이런 해시태그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운명적만남 #강력한느낌 #첫만남에서결혼까지 #황홀한고백 #달콤한인생 #플라토닉사랑

기록할 수단이 없던 시절, 나는 그 모든 태그를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통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장마철 어느 날, 그는 다정히 말했다.

“철옥아, 요즘 비도 많이 오는데 멋부린다고 굽 있는 구두 신고 다니다가 버스나 길에서 미끄러질까 봐 걱정돼. 그냥 투박해도 안전한 신발 신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지 마. 그러면 남자애들이 따라다닐 거 아냐.”

걱정과 애정, 그리고 가벼운 농담이 뒤섞인 그의 말에 나는 어느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9개월간 애정세포의 ‘결정적 시기’를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만남을 제안했다.

“아버지 사업이 거의 부도 직전이라, 가족 모두가 급히 제주도의 친척집으로 내려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가기 전에 널 꼭 보고 싶어. 토요일 오후 3시쯤… 만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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