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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게임 4

비트박스

by 유쾌한 철옥쌤

전화통화로 9개월 정도 애정세포의 결정적 시기를 유지할 즈음 그가 만나자고 하였다.

“아버지 사업이 거의 부도직전이라 가족들 모두 급히 제주도 친척집 쪽으로 가서 당분간 있을 예정이야. 가기전에 너를 꼭 보고 가고 싶어. 토요일날 3시즈음 볼 수 있겠어?”

“쌉가능이지!!!”

라고 본능적 말을 바로 내뱉으면 내가 너무 격하되기에 속으로만 말하고 정상적으로 약속장소와 시간등을 서로 정하면서 공식 첫만남을 앞두었다.

심장비트박스가 요동을 친다. 심장에



비상등켜졌고 추억

트렁크 활짝 열리고

밖으로 계속 되내어보는 스스윗한 언어들로 9개월을 함께 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수화기 너머 음성으로만 주고 받았기에 서로의 존재를 현실보다는 상상이 상시옵션이 된 환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실제로 만나면 환상이 깨어져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염려는 뿌리칠 수 없었다. 어색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를 만나러 가는 동부여객 버스는 신데렐라 태워가는 호박마차같았고 버스 창가로 보이는 10월의 뭉게구름은 세상 가장 달콤하고 푹신한 솜사탕같았다. 가을햇살 가득 묻은 가을바람이 나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순간, 난 ‘지금 만나러 갑니다’영화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노래는 이런 경우에 만들어졌겠구나 싶었다.

타오르는 태양도 오~ 날아가는 저 새도 오~~ 다 모두다 사랑하리~

모든 환상동화, 노래가사, 영화제목들을 번갈아가며 상상 릴레이를 하다보니 이제 그를 만나는 시간이 다 되었다. 약속한 큰 건물 앞에서 서로 마주 섰다. 어제도 만나고 헤어지고 오늘 만난 느낌이다. 우려한 어색함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전화할 때보다 더 편안한 느낌.

‘이 남자랑 정말 결혼해야 겠다. 운명같은 존재라는 걸 이제 내가 강하게 느꼈어...’

그의 손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작은 책자를 쥐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니 “그냥 간간히 읽기가 좋아. 조금전에 너 기다리면서 읽었던 글은 하루종일 마늘을 까는 할머니이야기였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손끝이 닳을 정도로 마늘을 까는데도 겨우 오천원밖에 못 받는대. 마음이 참 아파. 내가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결혼해서 생활비에서 한 달에 저렇게 어려운 할머니 조금 도와드릴 수 있는 형편을 유지하고 싶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 주었다. 이제껏 대화를 이런식으로 해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가족도 주변사람들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는게 아니라 이야기의 맥락에 사실과 바램과 따뜻함이 녹아 있는 그만의 언어는 참 특별함 그 자체였다. 까페에서 2시간 정도 속삭임, 미소, 약속, 눈빛 등을 주고 받았고 나란히 앉아 손을 잡으니 더 특별히 연결이 되었다. 그와 나의 체온이 연결되고 손에도 심장이 있는 듯

비트박스

비트박스 요동치는 느낌이 연결되었다. 제주도로 떠날 준비와 정리해야 할 일이 많은 그와 2시간 만남도 과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만남의 횟수와 시간이 중요하지 않음을 서로 동의했었고 이 순간 이후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이 서로라는 것도 동의하며 헤어졌다.

그 다음날이 제주도로 가는 날이다. 잘 갔으려나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갔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 공식 첫만남에서 결국 내가 마음에 안들었지만 속내를 숨기고 성품이 좋아 그냥 예의를 갖춰 애정이 있는 척 한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공식 첫만남 2시간동안 주고 받은 말과 눈빛, 움직임 등 하나도 빠짐없이 떠올리고 생각하고 또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을 무한 반복하는 거다. 무한반복인데 지겹지가 않다. 무한반복 떠올림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의 연락은 없다. 걱정되고 연락을 기다린다는 말을 나의 일기장에 썼다. 그가 있는 곳의 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일기장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과 함께 한 2시간의 모든 것을 무한 반복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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