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나에게도 삐삐가 생겼다. 그에게 삐삐번호를 가르쳐주었고 내 삐삐번호의 음성사서함 비번도 함께 공유했다. 서로에게 남길 메시지를 함께 공유하기로 하였다.
삐삐(호출기)에 음성녹음 기능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 지 몰랐다. 듣고 또 들어도 고갈되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꿀이.
나는 나대로 대학 4학년이 되었고 오빠는 오빠대로 아버지일을 도와드리느라 시간의 급류에 상황들이 흘러갔다. 거의 16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견우와 직녀도 12개월에 한 번씩 만나는데 우리의 만남의 텀은 더 길고 깊었다. 하지만 그 만큼 관계에 대한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애정으로 더 단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한번은 급하게 오빠로부터 호출이 와서 연락을 했는데 지인과 대구에 출장을 갔는데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바람에 아무런 일정을 해나가지 못해 급히 출장경비를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에게 그런 연락을 해주는게 난 너무 기쁘고 고마웠다. ‘정말 나는 지성오빠의 삶에 함께 밀착되어 있는 존재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과외를 하고 있었던 시기라 조금은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그가 말하는 계좌로 30만원 정도 보냈다. 계좌정보는 그와 함께 출장다니는 지인 ‘J’라는 사람의 것이었다. 며칠 후 지성오빠는 나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 경황이 없고 너무 바빠 다음날에 바로 전화를 못했다고 미안하다며 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난 내가 돈을 돌려받는 건 급한 일이 아니니 천천히 해도 되고 앞으로 수많은 날들을 함께 지내 나갈텐데 잘 해주고 다른 방법으로 갚아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냐며 받을 생각이 없음을 비추었다. 수많은 날들중 일부가 지나가며 나는 졸업하고 유아체능단 교사로 일하고 지성오빠는 불철주야로 아버지일에 혼신을 다하느라 2~3개월에 한 번 2시간 통화를 하며 3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지만 사랑은 빈도가 아니라 강도였다. 우리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사업은 빈도인지 강도인지 예측불가였다. 지성오빠네 사업은 마지막 어음을 막지 못해 또 한 번 부도를 맞이했다. 심지어 짜투리 돈이라도 막아보겠다고 해서 난 또 지난 번 보냈던 동업자 J의 계좌로 잔고를 끌어모아 40만원을 보내기도 했지만 부도를 막을 수 없었고 오빠는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들이(내게는 너무 하찮은) 사랑을 접거나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은 1도 들어오지 않았다. 평생을 라면만 먹는다고 해도 나는 지성오빠와 함께라면 평생 라면을 택할 수 있었고 택하는 게 운명이었다. 그 운명의 선상에서 4년만에 우리는 세 번째 만남을 가졌고 그때 나는 018 PCS폰을 챙겨갔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신용카드나 PCS폰 통신사에 가입이 불가했으므로 나에게 부탁했기에 내 명의로 가입했던 것이다. 내가 오빠에게 전해준 PCS폰으로 우리 둘만 단단하게 그리고 아름다운 언어들로 소리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문자도 보낼 수 있고 받을 수 있음에 정말 경이로웠다. 그렇게 몇 달을 연락을 이어가던 중 좀 의아한 일이 생겼다. 내 명의의 PCS폰이라 요금도 내가 납부했었다. 나랑 소식을 주고 받기위해 개설한 폰이라 늘 기본요금만 발생했다. 어느 시점부터 기본요금의 3배의 요금을 웃도는 금액의 사용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통화나 문자는 한 달에 1~2번이 다인데 연락의 양보다 요금이 많이 청구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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