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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입 안에서 시작된다

커피 한 잔, 낯선 조식, 그리고 그리운 찌개 한 그릇까지

by 요리연구가예서쌤

그리움은 입 안에서 시작된다.

새벽 기상과 함께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따뜻한 커피믹스 한 잔으로 하루를 연다.

커피 믹스를 한봉 찢어 컵에 넣고 물을

동그라미를 그리듯 따라 부으면,

달콤한 커피 향이 집안에 퍼지고,

초콜릿 색상의 커피와, 설탕,

부드러운 프림이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제 몸을 다 바치는 것이 아쉬운 듯,

하얀 거품 사이에 커피 알갱이가

차 스푼을 만나면 한 몸이 되어 버린다.

뽀얀 김이 눈을 자극하고,

커피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눈으로 음미하고 향으로 마셔본다.

커피를 한입 마시면, 커피의 쌉쏘롬한 맛과,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나를 반긴다.


뉴욕 조식.png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젊은 시절, 뉴욕의 힐튼 호텔에서 머물렀던

첫날 아침.
조식 뷔페가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본 호텔 조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넓은 테이블 위엔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이 넘치고,
내가 아는 건 스크램블에그, 소시지, 베이컨 정도였다.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기다리니
‘아이 뜨거워’ 하고 토스트가 튀어나온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에 버터를 바르니,
순식간에 스며들며 사라진다.
스크램블에그와 베이컨을 얹어

빵을 접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빵, 부드러운 버터, 짭조름한 베이컨.
거기에 상큼한 샐러드와 커피 한 잔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첫날 아침은 황홀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를 만난 것 같았다.


한식밥상.png


며칠이 지나자,

그 맛있게 먹었던 빵과 샐러드가

감흥이 조금씩 옅어졌다.
커피와 빵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많이 먹었지만 금방 속이 빈 듯한 허전함을 남겼다.

나는 결국, 밥과 국, 김치로 시작하는 사람이란 걸.

찌개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그리고 갓 지은 밥 한 공기가
내 몸을 단단하게 채워준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아침마다 다시 익숙한 찌개 냄새를 맡을 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따뜻한 국물이 속을 풀어주고,

입에선 저절로 '아이 시원해' 맛있다'라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매콤한 김치가 입맛을 돋우고,
밥 한 숟갈이 마음까지 든든하게 만든다.


커피한잔.png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연다.
그 속에는 아침을 깨우는 온기와 함께
뉴욕에서 먹었던 조식,
그리운 찌개의 향까지 녹아 있다.


결국, 그리움은 입 안에서 피어난다.
맛은 기억을 열고,
기억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운 맛이 남긴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움의맛 #커피한잔의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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