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을 때 외칠 수 있는 한 마디.
오랜만에 뵙는다고 말하자마자 마지막 주차가 되었다. 3주차였던 저저번주는 도쿄를 갔다. 가서 쓸 수 있으려나 했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하루종일 움직이다보니 숙소에 오면 발에 가시 돋은 휴족시간으로 발바닥을 비명나오게 눌러댔다.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래 역시 무리였구나 생각했다. 덕질을 목적으로 한 쇼핑 여행이었기 때문에 신명나게 돈을 쓰고 왔다. 본고장에서 하는 덕질은… 역시 다르더라. 후회를 남기기보다 돈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거의 후회 없이 쓰고 왔다.
그러면 지난주는 왜 못 왔냐. 뇌파에게 잠식당하고 스펀지밥 메롱시티 주민이 되어 할 일을 모두 잊어버렸다. 사소한 것에서 터져버렸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터져버린 멘탈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제일 심했던 시절처럼 죽음이라는 생각을 쉽게 야기하고 있다. 아직 실행에 이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병원 선생님과도 다음 상담까지 멀쩡하게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문제 없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이걸로 버틸 수 있겠지.
출근은 당연히 싫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지난주 작업실에서 일주일 내내 엄청 먹고 술도 마셨다. 우울감을 잊기 위해 친구들에게 다함께 전화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잠을 자도 잔 느낌이 들지 않고 하루종일 램수면 상태인 기분이다.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기분이다 싶더니 약 먹는 것도 잊은지 한 달은 된 것 같다. 그 시기에 멘탈까지 터져버리니 와 큰일났다! 싶었다.
다음 기수 글쓰기 신청을 놓쳤다. 오늘에 와서야 아 맞다 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회사 야유회 가는 날 아침 조회 시간에 노트북 붙잡고 부랴부랴 한 글자라도 적고 있다. 마지막 주차까지 놓치면 난 후회할 게 분명하니까. 물 먹은 휴지 같은 몸을 이끌고 듣기 싫은 조회(특히 목소리)를 들으면서 적는다. 안녕을 고하기 위해서. 멀쩡히 살아서 다시 인사를 말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사망플래그 같은 말이라 부랴부랴 뒷말을 적는다.
우울감으로 잠식되니 이딴 말들밖에 안 나온다. 나는 슬픔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늘 양쪽에서 감정들이 싸운다. 어딘가 적거나 말해서 표출하고 싶은 마음과 읽는 사람을 괴롭히지 말자라는 생각이 늘 충돌한다.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얘기하다가도 "아 이제 그만 얘기할래" 하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건다. 나도 모르게 봇물 터지듯이 말하다가 급하게 물길을 막는 거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일기를 쓰면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것 같지만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본인 감정을 실체화 시키는 과정과 함께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정리가 된다고 한다. 다음 기수는 놓쳤지만 내가 해야할 건 글쓰기다. 정말 하기 싫어도 해야할 숙제다. 아쉬운 건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지 못 한다는 거겠지.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 또한 홀로 감당해내려고 하면 해소되지 않아 쌓이기만 한다. 모든 일이 다 똑같다. 무언가 하는 행위는 혼자 성과가 나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슬픔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했지만 반이 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쉽지 않다면 전문가에게 가는 것도 좋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병원을 한 곳 늘리는 걸 추천했다. 내가 사는 곳과 병원은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상담을 늘리라 권하고 싶지만 가깝지 않은 거리라 집 주변으로 매주 상담을 진행할 것은 어떠냐 물었다. 본래 가던 병원은 격주에 한 번씩 그대로. 집 주변은 매주. 나에게 필요할 것 같다 했다. 매주 좀 더 밀첩하게 마크해주는 사람을 뭐라 칭했는데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페이스 메이커 같은 사람인 걸로 기억한다.
나는 파워 I인 사람으로 혼자 있는 게 좋다. 로또 1등이 당첨 되어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세상에 헬스 PT부터 다음달에 나갈 카드값 생각하면 출근은 당연한 거다. 지금 절대 얘기 나온 야유회가 싫어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누가 여기 틀어둔 음악 소리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 어휴 지겨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우울감이 심해지니 더 혼자 있고 싶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작업실에서 내내 지내고 친한 사람들과만 그나마 랜선으로 수다 떨면서 지내고 싶다. 언젠가 비싼 아파트가를 지나면서 우리는 로또 당첨 돼도 저기는 못 살아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당첨이 되어야 실현 가능한 일이다.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끝내주는 하루 일과를 보내줄 자신 있다. 아무래도 나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고양이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사람 쪽은 아닌 듯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산성이 없으면 도태되는 게 슬프다. 좀 게으르게 살 수도 있지! 하지만 성취감은 삶의 좋은 영향을 준다. 그 성취감을 느끼기 위한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게 흠이지만. 남들보다 노력을 배로 해야하는 나는 성취감을 평생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에 꽤 오래 우울증을 앓아왔을 거다. 주의력결핍 이슈로 인해 거의 평생 노력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성과와 성취감이 없으니 고치는 것도 어렵다. 괜찮다 싶으면 뇌파가 이렇게 괴롭히니 어휴. 평생 이렇게 살까봐 걱정이다.
도쿄에 가서 같이 간 친구들과 생긴 유행어가 하나 있다. 바로 '우땨땨'. 대답하기 싫어지거나 할 말 없을 때, 뭔가 상황이 애매하다 싶으면 우땨땨~? 하면서 옹알이 하는 거다. 내가 숙소에 늘어져있는 쓰레기 보고 어떤 놈이야! 하고 소리치면 한 명은 난 아니야라고 대답하고 한 명은 우땨땨거린다? 그럼 범인은 그 사람이다.
나름 유용해서 모두에게 추천한다. 비슷한 말로는 ‘우웅~’도 괜찮다. 뭔가 애매하거나 미묘한 상황에 본인 스스로에게 유아퇴행적인 행위를 붙이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괜찮아지더라. 연인이 사이가 깊어지면 자연스러운 유아퇴행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나. 비슷한 결일 것 같다.
스스로 합리화 하는 습관도 과하지만 않다면 중요한 것 같다. 자책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합리화 하면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아몰랑을 외치면서 살아야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쉬워서 별 얘기를 다 끄집어내봤다. 퇴고도 없는 글이니 나중에 몰래 돌아와서 퇴고를 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언젠가 다른 기수에 다시 만날 걸 기약하면서 안녕!
[글쓰기 37기_5주차] 202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