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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아니 냥발로 마중 나오는 아이들

행복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by 김편선

무더위가 한풀 꺾인 9월 중순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사료 한 봉지와 캔을 들고 천흥 저수지로 갔다.



밥 자리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수지 물이 흘러내려가는 곳.

이곳의 아이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이다.

물이 흘러넘치거나 저수지 관리차원에서 물을 흘려보낼 때는 저수지의 역할을 하지만 요즘은 길고양이 아이들에게 이곳은 아주 넓고 안전한 놀이터이다.




어디서 굴러온 걸까?

나무 둥치를 베고 눕기도 하고, 바닥에 뒹굴거리기도 한다.

너무 더운 한낮에는 테크길에 만들어주는 작은 그늘에 의지해 쉬기도 한다.

이 두 녀석들이 그곳이 단골이다.

커플인 건지, 사이좋은 남매냥이인 건지 항상 붙어 다니는 두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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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굴을 익힌 지 두어 달.

아직까지 손길을 허락하지는 않지만, 내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을 한다.




이날은 정말 감동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저수지 물이 내려가는 바닥에서 놀고 있기에 불렀더니 두 녀석이 바로 뛰어온다.

몇 년 만에 임이라도 만난듯한 발길이다.




우리가 반가움을 표현할 때 "버선발로 뛰어나온다."라고 하지 않는가.

이 아이들이 정말 나의 목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아니 냥발(고양이발)로 뛰어나왔다.

곁에 와서는 감히 부비부비는 못하고, 냥냥거리며 빨리 밥을 달란다.

얼른 밥 한 상 차려드렸다.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행복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나의 소소한 행복이지만, 큰 책임감을 느끼며

나는 오늘도 천흥 저수지에 간다.








#길고양이 #냥냥의일상 #저수지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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