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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밥그릇

걷다가 만난 길냥이들을 위한 자연의 선물

by 김편선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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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흥 저수지에 가게 된 것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수지 둘레길을 두어 바퀴 돌면서 건강을 챙기려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주차를 하자마자 신발끈을 고쳐 묶고 열심히 걸었다. 그때만 해도 고양이들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고양이보나는 저수지 물 위의 물오리들과 내가 걷는 길가의 풀이며 들꽃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회색 냥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내 눈에 이런저런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료를 챙겨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교 많은 치즈냥이, 겁쟁이 턱시도냥이, 커플로 다니는 냥이, 우수관에 살면서 부르면 사료 먹으러 내려오는 까만 냥이 가족 등.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부터 차에서 내리면 먼저 사료부터 챙겨주었다. 사료를 챙겨놓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사료를 한 봉지씩 챙겨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밥그릇이었다. 가볍게 걷는 차림이기에 주머니에 사료 한 줌 정도는 넣을 수 있지만 밥그릇까지 챙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땅바닥에 바로 사료를 놓아주기는 찜찜했다. 고민 끝에 주위를 둘러보니,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였기에 커다란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한 장을 따서 그 위에 사료를 올려보니 제법 괜찮았다.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 아니 자연이 그 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나뭇잎 밥그릇'이 생겼다. 넓고 단단한 잎이면 충분했고, 비가 온 날이면 잎의 뒷면을 뒤집어 사용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작은 돌을 올려 밥그릇을 고정했다. 고양이들은 신기한 듯 킁킁거리다가 곧잘 먹었다. 그렇게 운동 중에 만난 아이들에게도 문제없이 사료를 줄 수 있었다. 



그날도 코숏 아이를 만나 나뭇잎을 뜯어서 그 위에 사료를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냠냠냠' 참 맛있게도 먹었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밥을 다 먹은 것을 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졸졸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졸졸 따라왔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뒤돌아 걸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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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깨달았다. 이미 내 목적은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걷기 위해 온 곳이었다. 간식을 챙겨 준 것은 예쁜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고, 처음 사료를 주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어쭙잖은 동정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작은 존재들이 기다리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사료와 캔을 챙기고 그곳을 간다. 



나는 오늘도 천흥 저수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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