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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Sep 27. 2023

한 편의 글을 쓰는 시간

걷기 운동을 하며...


글쓰기를 한다고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 내 안에 있던 게으름이 글쓰기를 핑계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 것이다.



점점 옆구리에 달라붙는 살집을 느끼며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마침 커뮤니티에서 100일 챌린지를 한다고 한다. 살짝 부담되었지만 만 보 걷기로 얼른 신청했다. 이렇게 강제성이 주어져야만 실천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때였다.



챌린지 첫날.


오전 수업과 글쓰기 모임이 있어 오전에 걷기를 못했더니 저녁 10시가 넘었는데도 6,000보 정도였다. 순간 고민했다. 다른 챌린지도 하는데 만 보 걷기는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첫날부터, 아니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래서 한밤중에 시골길을 40여 분 걸었다.



시골이어서인지 하늘의 별은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아! 얼마만의 밤하늘의 별을 본 것일까?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긴 하지만 도심에서는 달은 몰라도 별을 만나기는 정말 힘들다.



마감 시간이 촉박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지난 추억도 길어올렸다.



나는 다른 운동보다는 걷기를 좋아한다. 유달리 근력 운동을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많은 유산소 운동 중에서도 유독 걷기를 좋아한다. 도심의 공원을 걷기도 하고, 도심을 조금 벗어나 저수지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이 참 좋다. 눈으로 본 풍경이 핸드폰 카메라를 만나면 또 다른 풍경이 된다. 풀잎에 맺힌 빗방울이, 각양각색의 하늘이, 때론 소소하고 때론 화려한 그 계절의 꽃들이, 그저 풀들이 내게는 다 멋진 풍경이다.



걷다 보면 이 풍경도 사라진다. 발걸음을 빨라졌다 느려졌다 멈추지 않고 걷는데, 머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 시 한 편을 쓰기도 한다.

잠시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집에 가서 뭘 먹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제 못다 한 일이 떠올라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저런 돈 나갈 걱정에 통장 잔고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차박을 갈까 생각도 한다.

엄마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블로그에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가 가기 전에 친구들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 생각, 생각하면서 걷는다.



그러다 문득 텅 비는 어느 순간이 있다. 그저 머릿속이 텅 비면서 발걸음만 뚜벅뚜벅. 평지를 걸을 때보다 등산할 때는 이 순간이 더 자주, 더 오래 계속된다. 산길을 걷다 보면 그저 숨이 차오르고 머릿속은 비워져 간다. 마음속 욕심도 산길 한 모퉁이에 내려놓고 오게 된다. 그래서 산을 내려올 때는 몸조차도 가벼워진다.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걷기를 시작했지만 걸으면서 나는 한 편의 글을 쓴다. 시를 쓰기도 하고,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추억을 엮어내기도 한다. 나를 쓰는 시간이다.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아니, 다 비우는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그 길은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을 한 편을 마음에 담았다.





<성거산 아래 천흥 저수지를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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