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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연조차 행복했던 날 7

아내, 그녀는 술 못하는 술친구

by 김편선

연애 시절,

남편의 부탁은 냉장고에 술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거였다.

한번도 취한 모습을 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저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술주정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나,

그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던 사람이라 믿음이 갔다.



결혼한 후에야 알았다.

그의 과묵함이 낯가림이었다는 것을.

얼마나 수다쟁이이던지.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날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했다.

주제도 참 다양했다.




20여 년,

그의 술친구를 해주느라 참 힘들었다.

나는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고, 운전을 시작한 후로는 한 잔 술조차 하지 않았으니,,,



이제는 그도 술 한 잔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그의 술친구를 해 주고 싶다.






아내, 그녀는 술 못하는 술친구



담배 연기 자욱한 호프집이었던가

켜켜 묵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편의점 파라솔 아래였던가

그는 평생 술친구를 해달라 했다

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던가 그냥 빙그레 웃었던가


한 잔 술에도 붉은 꽃이 되는 난

그렇게 그의 술친구가 되었다


몇 년이 흘러 술 못 마시는 나에게 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았냐며 놀리곤 했다

그 말에 난 한 잔 술도 안 마시고 붉은 꽃이 되었다


또 몇 년이 흘러 술친구는 무슨

술도 남편도 다용도실 한구석에 쓰윽 밀어두고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 당신의 술친구, 당신의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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