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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25. 2023

50대 아줌마도 종종 엉뚱한 생각을 한다

웹소설 마니아의 엉뚱한 생각

텔레비전이 짐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던 어느 날.

옆집에서 쓰던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고 하기에 과감하게 우리 집 것을 가져가라고 했다. 이전부터 고민 중이었기에 기회다 싶어 얼른 줘버렸다.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동물농장>이었는데 이 기회에 과감하게 텔레비전도 동물농장도 떠나보냈다.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내고 자유를 얻은 듯싶었으나 난 새로운 늪에 빠졌다. 매일 아침,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켜듯 손안의 아침드라마를 만난 셈이다. 



아침 드라마는 흔히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가 많다. 



출생의 비밀, 가난하지만 착하고 예쁜 여주, 능력 있고 잘 생기고 금수저이기까지 한 실땅님이거나 본부장님인 남주, 별로 예쁘지도 않으면서 여주를 방해하는 자칭 남주의 약혼녀, 여주와 남주를 떼어놓으려고 애쓰는 사모님, 기억 상실…….



아침 드라마의 막장 요소들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버무려 놓느냐에 따라서 재미가 달라진다. 여기서 하나를 더하기도 하고, 어느 하나를 빼기도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데 아침마다 많은 사람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매일 웹소설을 본다. 읽는 것이 아니라 본다. 마치 누군가 켜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막장 드라마를 무심히 보듯 의식하지 않은 채 무심히 손가락을 터치해 화면을 켜 놓고는 눈으로 보고 있다. 



내가 주로 보는 영역은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미스터리이다. 그중에서 로맨스 판타지는 대체로 회귀, 책 속의 주인공으로의 빙의, 수인(獸人)의 요소가 등장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소재들인가? 그런데도 마치 아침드라마를 보듯이 빠져들어서 보고 있다.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과거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갔을 때 현재 삶의 지식이나 기억을 이용한다. 로또 번호를 기억하기도 하고, 회귀한 시점에 일어날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나는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 회귀하거나 다른 세계를 만난다면 과연 어떤 기억을 갖고 갈까? 세세한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로또 번호를 외우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주식 정보도 잘 모르니 어떤 주식을 사라고 조언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부동산도 대충 어디가 집값이 비싸다는 정도이지 구체적인 수치를 잘 모른다. 나는 숫자에 약한 완벽한 '문송합니다.'이다. 예쁜 외모가 아니니 그 세계에서도 주인공으로서의 삶은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내 삶에서 항상 나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면 혹시 나. 로또 번호 몇 회차 쯤은 외워두어야 할까? 주식 흐름을 좀 파악해 두어야 할까? 부동산 앱이라도 깔아서 시세라도 파악하고 있어야 할까? 아님 타임캡슐을 묻듯 세세한 정보를 적어서 어딘가 나무 밑에 묻어두기라도 해야 할까? 



이런 쓸데없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정말 엉뚱한 생각이다. 내가 수업하는 아이들도 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싫지 않다. 나름 사랑스럽다. 



오늘도 나는 웹소설을 읽지 않고 보면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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