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얼굴

by 술술

나는 옛날 사진을 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결혼할 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말했다. 어차피 결혼하면 결혼앨범 잘 안 보게 되니, 비싼 돈 들여서 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비싼 사진을 찍고 싶진 않았지만, 나중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사진을 찍고 싶었고. 나와 신랑에게 어울리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해 가며 컨셉을 고르고 업체를 선정했다. 하지만 사진이 중요했지, 앨범 커버나 액자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머지는 가장 기본으로 했다. 결혼식을 치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혼은 다 돈이다. 나에겐 일생에 하나밖에 없는 중요한 날이지만, (대부분의) 업체 입장에서는 생계이기도 하기에 뭘 더 하려고만 하면 돈이 붙는다. 우리는 그들의 장사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부부 일심동체가 되어 중요한 것들 외에는 기본으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액자는 진작에 부서져서 사진만 남았는데, 우리 눈에는 그게 오히려 더 좋았다. 요즘 유행하는 건물 구조를 살린 콘크리트 감성의 핫한 카페처럼, 더 세련돼 보인달까.

거실에 놔둔 결혼사진에서, 드라이브에 저장해 둔 사진에서 10년 전의 신랑과 내가 웃고 있다. 사진작가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미소긴 하지만, 정말로 희망 차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 (그때 나이 법으로) 나는 31살, 신랑은 35살이었다. 이른 나이는 아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참 어려 보인다.

우리 엄마 31살에는 뭐 하고 있었을까? 엄마가 31살이면 1987년도. 내가 3살, 오빠가 5살이었겠다. 내가 멋모르고 결혼할 나이에 엄마는 이미 나의 엄마, 오빠의 엄마였구나. 심지어 나는 그때의 나도, 오빠도, 엄마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집에 있는 사진들을 보며 그때 우리 가족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가게를 했다. 빵집, 분식집, 만둣집. 그래서 대부분이 가게에 있는 사진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꽈배기를 만들고 있는 아빠. 그 옆에서 우리를 보며 웃고 있는 엄마. 가끔 놀러 간 사진도 있다. 1년에 한 번. 여름마다 가는 풀장. 한겨울에, 박물관에 간 사진. 엄마와 아빠는 양쪽에서 내 손을 잡아 나를 그네처럼 들어 올린다. 그러면 나는 얼음이 언 길 위를 썰매 타듯 미끄러진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사진이 몇 개다. 하나는 엄마가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사진이다. 스케치북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동화를 그림으로 그려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셨던 것 같다. 내가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눈에는 엄마의 그림이 정말 멋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그림 한 번 배우지 않은 엄마는 정말 그림을 잘 그렸다. 더구나 자신은 자신이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는 줄도 몰랐을 거다. 아마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엄마가 무척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엄마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에는 엄마만 크게 찍혀있고 뒤에 배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당시 파마머리. 그러니까 미스코리아 머리 혹은 사자머리라고 하는 머리가 유행이었다. 엄마도 어깨 정도까지 오는 길이에 보글보글한 파마를 하고 있다. 엄마는 눈으로는 웃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추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다. 이 사진에 엄마만 크게 있는 이유는 내가 찍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유치원 졸업식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내가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며 나섰겠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는 엄마였기에 아마도 해보라고 했을 테고, 엄마는 사진 찍는 나를 보며 그런 표정을 지었을 거다.

요즘 말로 딸바보, 자식 바보, 꿀 떨어지는 표정..

마지막 사진은 놀이터에 오빠와 내가 있는 사진이다. 사진 귀퉁이에 87년도라고 되어 있으니 오빠는 5살, 나는 3살쯤이겠다. 나는 그네를 타고 있고, 오빠는 내가 탄 그네 쇠사슬 끈을 손으로 잡고 있다. 오빠는 살짝 귀찮은 듯 멍한 표정이다. (오빠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데 그나마 어릴 때라 엄마 손에 이끌려 나왔을 거다. 아마 후딱 사진을 찍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었겠지) 나는 엄마가 한껏 당겨 묶은 머리 덕분에 눈은 위로 쪽 찢어져서 마치 째려보듯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마도 사진 찍는 엄마를 위로 쳐다본 듯하다. 내가 이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은 오빠랑 같이 찍은 사진이 없기도 하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다. 나는 위에는 흰색, 아래는 무릎 정도까지 오는 하늘색 한복을 입고 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저 한복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저 한복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다 저 한복이 생겼고, 입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좋아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 사진이 좋아서, 카카오톡 프로필로 하고 있다.

사진을 보다 보면 조금씩 생생하게 그 날이 떠오른다. 사진은 점점 빛바래가지만, 기억은 점점 선명해진다. 결혼할 때의 우리도. 내가 어릴 때의 우리 가족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나이지만, 지금의 나는 아닌 얼굴. 사진을 보며 종종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혹은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때의 나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얼굴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사진을 더 찍으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언제라도 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기도 한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오빠의 사진을 찍는 건 쉽지 않아서 죄다 파파라치 사진이거나 얼굴을 가린 사진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 또한 나중에 보며 웃게 되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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