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밥 먹으면서 같이 넷플릭스 보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라이 투 미(Lie to me)’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미세한 표정을 보고 거짓말을 알아차려 여러 사건을 해결한다. 일반 사람들은 지나칠 법한 아주 작은 표정, 찰나의 몸짓을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사람의 표정이 저렇게 다양하구나, 저런 몸짓은 저런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구나 생각해보기도 하고. 정말 저런 분야가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대부분 수사 드라마가 그렇듯 주인공의 능력은 너무 뛰어나서 풀지 못하는 사건이 없기에 이런 사람만 있으면 그것이 알고 싶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신랑과 나는 서로 얘기하다 드라마에 나온 표정이나 행동을 발견하면 지금 거짓말하는 거냐, 지금 화난 거냐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살인범의 이야기였다. 범인은 여자를 강간한 후,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눈에 염산을 뿌려 눈을 뽑는다. 범인은 잡혀 감옥에 갔지만 10년 후, 그 범인을 모방한 범죄가 발생한다. 그 모방 범죄자를 찾는 게 주요 이야기였다. 물론, 주인공이 매우 뛰어나기에 우여곡절 끝에 모방 범죄자를 잡는다. 문제는, 그 모방 범죄자가 누구냐 하는 거였다. 모방 범죄자는 최초 피해자의 남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최초 살인범을 우상시하던 모방 범죄자가 최초 피해자에게 접근해서 결혼까지 한 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최초 피해자는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 감정을 표현하기에 충격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가볍고 단순하지만) 그 장면을 보던 신랑이 말한다.
“저 사람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겠다.”
화면에는 눈이 없는 피해자가 목 놓아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고, 울고 있지만 울지 못했다.
사람들은 슬플 때, 좋을 때, 화가 날 때, 우울할 때 눈물을 흘린다. 심지어 울고 싶지 않을 때도 눈물이 차올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눈물은 너무도 당연했던 건데, 당연했던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다 당연하지 않아 보였다.
얼마 전 엄마는 자전거를 타다가 앞에 오는 사람을 피하려다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며칠 뒤부터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물체가 안 보이다가 두 개, 세 개로 보이다가 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뇌나 눈에 문제는 없고 일시적인 현상이라 점차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점차’라는 말은 그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매우 기약 없는 날들이기도 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날은 당장 나을 것처럼 기뻐했다가 다시 안 보이는 날은 언제쯤 나아질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점자……. 몇 달 후에야……. 엄마의 눈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안보이는 것이 보이고, 두 개, 세 개로 보이던 것이 하나로 보였다. 좋아지고 나서야 엄마는 말했다. 이제 와 말이지만 정말 너무 겁이 났다며, 보이던 게 안 보이니 살고 싶지 않았다며.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은 정말 힘들 것 같다고.
항상 곁에 있어 너무 당연했던 것들은 소중함을 잘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도, 음식을 먹으며 맛을 느끼는 것도.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신랑과 투닥투닥 거리는 순간들마저도.
라이 투 미(Lie to me)의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자신은 거짓말을 굉장히 능숙하게 하고, 솔직한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자신만의 삐딱한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챙긴다. 그를 잘 아는 그의 전처가 그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당신은 꼭 희한한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하더라.”
말하지 않아도 혹은 이렇게 말해도 당연히 알 거로 생각할 때가 있는데 특히 ‘감정 표현’이 그런 것 같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건 누가 처음 생각한 걸까. 너무 당연한 사람들이란 생각에 너무도 당연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축하한다…….
당연한 사이는 없다. 당연한 감정도 없다. 내 곁에 모든 사람이 소중하고, 내가 그리고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신랑, 낮에 만들어준 음식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